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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니다

두 분에게는 평생 빚쟁이 -이지민-

작성자2천사|작성시간22.05.12|조회수89 목록 댓글 3

 

 

 

 부주의로 발목 뼈가 부러져 수술하고 병원에 누워 있었다. 살이 아물 때까지 시간이 가기만을 아프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병실 침대에 누워서 아프다고 혼자서 울먹였다. 때때로 옆에서 간호하시던 어머니에게 짜증을 내고 억지를 부렸다.

“어쩔 수 없는 거 니도 알잖아!”

하고 어머니가 위로 아닌 위로 비슷한 한 마디를 건네셨다.

나는 어머니의 그 말이 무자비하게 느껴졌다. 아프기도 하고 어머니의 말도 정냄이가 떨어져서 화를 내며 한 마디로 쏘아댔다.

“엄니! 정말 내 친(親)엄마 맞나? 범어천에서 주워왔다고 농담하더니, 진짜 그런 거 아이가, 맞제?”

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냈다.

 

 

그런데 그날 밤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잠이 깨어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분명히 보았다. 내 머리맡에서 눈물을 흘리며 묵주를 쥐고 기도하는 어머니를…….

자녀들 앞에서는 강한 척, 센 척하는 부모님의 사랑. 그러나 뒤돌아서서는 몰래 눈물을 훔치는 부모님의 사랑. 아가페적 사랑이다. 한 번도 자녀를 이기지 못하는 모정(母情)은 하느님과 성모님의 사랑도 이와 다를 바 없으리라.

그러나 이 세상에 나를 포함한 자식들은 그 사랑을 매몰차게 외면해버린다. 그 ‘사랑’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애석하게도 어리고 철없는 자식들로서는 아직 체험해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고통과 시련에 대해서는 부모님은 늘 눈 감고 계신다고 말을 하기 일쑤다.

 

나에게 ‘어머니’는 남다르다. 교통 사고로 죽었다가 55일 만에 환생하여 함께 아니, 나의 ‘껌딱지’가 되어 지금까지 내 몸이 되어 주셨다. 내가 아프면 어머니는 더 뜨겁게 아파야만 했을 터이다.

요즘은 부모고, 자식이고, 생각지도 않고 돈․물질 때문에 서로를 해치고 죽이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반인륜적 세상이 된 지 오래다. 이런 무자비한 세상에 몸이 불편한 딸과 아픔도, 슬픔도, 때때로 기쁨도 함께 하는 부모님을 가진 나는 복(福)을 받아도 넘치도록 받았다. 이렇게 늘 받기만 하면서도 사고를 치거나 일만 내면 ‘엄니, 엄니!……’한다.

 

 

 

 

 

어머니(로사리아)와 나(클라라)는 아는 건 없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성당에나가는 가톨릭(catholic)교 신자다. 하느님은 사람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세상 모든 피조물들에게 공평하다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도대체 뭐 때문에 ‘나(클라라)’는 하느님의 사랑 즉 은총을 이리도 넘치게 받았는지 당체 알 수가 없다. 사고로 죽었을 때 하느님이 바로 데려가지 않고 아직 올 때가 되지 않았다며 새 생명을 주셨다. 다니던 학교에 복학해서도 치료, 운동, 학업을 매일 해야 해서 힘들었지만 그렇게라도 내가 살아서 할 수 있다는 그것 만으로도 감사하고 좋았다. 이도 하느님의 또다른 은총 아니겠는가. 고등학교도 멀리 가지 않고 가까이에서 다닐 수 있게 대학교, 대학원도 가서 공부할 수 있게 이끌어 주신 것도 저 위에계신 아니, 내 작은 마음 안에 계신 하느님 덕택인 걸 잘 안다. 살아가면서 왜 또다른 시련이 없었겠나. 다리도 부러뜨리고 길 가다가 돌이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기도 수십 번, 사고도 많이 났다. 포기하려고 할 때마다 힘을 내라고 ‘니 옆에 내가 있잖아.’하며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셨다. 이렇게 자비로운 하느님께 나는 참 얄밉게 굴었다. 사고로 다쳐서 통증이 심할 때는 하느님께 ‘이 통증 다 가져 가세요. 안 그러면 제 리스트에서 하느님 자를 겁니다.’ 하면서 못되게 감히 하느님을 상대로 협박도 많이 하는 모진 나였다. 그런데도 하느님은 내가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하시니 당체 내 좁은 속으로는 하느님의 깊고 넓은 속을 다 알 길이 없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렇게 넘치도록 은총 속에 살아가면서도 하던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교회‧성당‧절에 가서 ‘이것 해주세요, 저것도 해주세요, 요것도 해주세요’ 하고 바라기만 한다.

하느님이 이리도 부족하고 모자란 나를 이 세상에 다시 일어서게 한 이유를 나는 안다. 어찌 보면, ‘나’는 결핍과 문제의 대명사다. 그러나 그래서 회피하거나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부족하고 문제가 누구나 가질 수 있다는 걸, 또 그걸 채우려고 노력하는 삶을 나를 통하여 보여주려 한 것이리라.

램프를 만든 것은 어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침반을 만든 것은 안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험을 무릎쓰고 탐험하게 된 것도 배고픔을 잊으려 했던 것 아닌가. 일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의기소침한 날들이 필요했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하느님으로부터도 한없이 늘 받기만 했으니 평생 ‘빚쟁이’라고 생각한다. 빚을 좀 탕감할 길이 있으려나?

그건 또 그렇지가 않다. 어쩔 도리가 없다.

‘나’라는 사람은 하느님과 어머니께는 평생을 빚쟁이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기도속에서 저이지민글라라와어머니전로사리아여사를 위해기억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당^^

제가 또 일케 뻔뻔합니다! 하하하하하    헤헤헤^^^^이뻔뻔함도 좀 이뿌게 봐주시면 안될까유?하느님 아부지====애교도 하나 업서서 민망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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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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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종해 | 작성시간 22.05.12 아이고, 그 빚 이야기하시면 모두 빚쟁이 랍니다.

    마음의 빚은 마음으로만 갚을 수 있는 것,
    살아가며 조금씩 갚아야지요.

    자매님의 뻔뻔항?을우리 하느님께서 잘 기억하고계실 겁니다.

    항상 행복하십시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2천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5.13 하느님은 기억력도 짱이라 이런 몬난 것까지 다 기억하시려나? 난 우짜노! 하느님 이런거는 좀 이젔뿌도 되는데예^^^^그라마 요것만 기억하시소! 제가 너무너무 마이 사랑한다는거요.저는 애인도 엄꼬 아버지 뿐입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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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나무 | 작성시간 22.05.13 생활하면서 엄마와 즐겁게 콩콩 웃으면서 사시기를요!
    부모는 하루하루 늙어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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