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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엣대주교님묵상

인류 공동체적 삶(연중 제26주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16.09.26|조회수159 목록 댓글 2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인류 공동체적 삶(연중 제26주일)


복음 루카 16,19-31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세계화가 거듭될수록 인류는 생명 공동체가 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안위는 누구 하나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류 공동의 문제입니다. 인류를 구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을 구하는 것입니다. 어떤 작은 재난이라도 초기에 막지 못한다면 한 순간에 확산되어 전 세계로 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 함께한다는 인류공동체적인 연대감은 이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되었습니다. 연대감은 타인과 나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며,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의 절박한 임무입니다. 우리 인류가 공동체의 삶을 통감할 때, 인류는 비로소 복음의 길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 공동체의 연대감의 필요성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형제이므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뭉치고 하나되는 공동체 의식은 하늘나라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러한 인류 공동체 의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대해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돈이 많다는 것은 죄가 아닌 데 왜 지옥으로 떨어져야 합니까? 저는 남의 것을 탐내지도, 훔치지도 빼앗지도 않았습니다. 내 힘으로 힘들게 번 돈을 내가 쓰는 것도 내 권한이지 않습니까? 부유한 것은 죄가 아니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가졌다는 것이 죄가 되진 않습니다.

지난 주 예수님께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웃을 도와줌으로써 영원한 친구를 만들어야 하고, 그 친구의 도움으로 영원한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이 세상 돈의 가치를 영원한 가치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돈을 쓰는 방법을 알고 사용할 때 그 돈은 긍정적인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을 모르고 사용한다면 많은 유혹을 받게 될 것입니다.

돈은 사람의 마음을 유혹합니다.

돈은 사람의 정신을 옭아매는 끈이 되기도 합니다. 돈에 유혹된 마음은 목에 끈을 묶어 놓은 새와 같아 멀리 날아 갈 수 없습니다. 성경에 신앙의 길을 가려는 청년에 대한 비유가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영원히 살 수 있는 지 여쭤보려고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묶여 있는 그였기에 예수님의 부르심에도 한 걸음도 다가갈 수 없었기에 결국 그 길을 포기하고 익숙해져 있는 평범한 생활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돈은 사람의 마음을 자비심 없는 딱딱한 돌로 만듭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쉽게 자만심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많이 가졌기에 남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여 이웃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부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다 보니 다른 사람을 돌아 볼 자비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라자로가 가파른 숨을 쉬며 자기 집 대문 앞에 누워 있었지만 보지 못했고 그의 고통과 굶주림을 호소하는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자만심으로 꼭 닫혀 있는 그의 마음은 어려운 사람의 고통에 인색했습니다. 남아도는 빵 조각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가난한 라자로를 생각할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라자로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떨어진 빵 조각을 찾을 때, 부자는 아무 생각 없이 남은 빵 조각을 휴지통에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기심이 이웃과의 공동체 의식을 상실하도록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돈은 영원한 행복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하늘나라의 행복이란, 삼위일체의 사랑 속에서, 서로 도와주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사는 평화로운 생활을 말합니다. 모든 것을 받기 위해 모든 것을 주는 삶이어야만 합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비심과 이해심이 요구되는 인류 공동체를 위한 생활에 함께할 수 없기에 스스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길을 선택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고 흙으로 덮는 사람입니다. 이웃과의 공동체 의식이 없이 사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하늘나라에서 추방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부자가 지옥에서 학대를 받는 이유입니다. 부자라는 것이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단지 남을 위한 배려, 돌봄의 마음이 부족해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즉, 부자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다른 사람과 나누는 연대감입니다.

부자는 이 세상에서 라자로가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과 라자로를 구분 짓기 위해 문을 꼭 닫아버렸고 그 꽉 닫힌 문이 바로 영원한 세계에서 그들을 갈라놓는 선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승에서 고통 받을 때 다른 누구도 아닌 그가 바로 자신에게 한 방울의 물이라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때였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서 형성되지 못한 이웃과의 연대감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비유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주십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와 이웃은 평행선과 같은 운명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묶여 있는 같은 인류 공동체 운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나의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관심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의 단련으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웃의 불행에 마음이 움직이고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세심한 마음을 가지도록 나를 단련시켜야 합니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은 이웃의 형제들과 나눌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나를 단련시켜야 합니다.

주님, 이웃 형제들의 모습에서 주님을 볼 수 있도록 저희 눈을 뜨게 하여 주소서. 고통 받는 이웃의 탄식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저희 귀를 열어주소서. 그리고 그들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저희 마음의 문을 열게 하여 주소서.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이웃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2. 지나치게 넘치는 생활은 영혼의 삶을 자유롭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복음 속의 부자는 왜 지옥에 떨어진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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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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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강민주(요안나) | 작성시간 16.09.26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기가 어렵다고 늘 복음말씀에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아멘' 하면서도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포장으로 오늘도 비워야 할 곳에 조금이라도 더 채우고 또 채우려하고 있습니다,
    주님~~~~세상의 물질을 놓을수 없는 저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 작성자Anee | 작성시간 16.09.27 아멘. 감사합니다. 부자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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