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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엣대주교님묵상

복음을 증거하는 삶(연중 제33주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16.11.13|조회수166 목록 댓글 1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복음을 증거하는 삶(연중 제33주일)


복음 루카 21,5-19

그때에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12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저는 저희 베트남 성인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 분들과 같은 베트남사람이라는 것이 영광스럽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세계 다른 나라처럼 성인들이 계셔서 진심으로 기쁩니다. 그리고 많은 순교 성인들이 계시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베트남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117분의 순교 성인이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그분들은 하느님을 증거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분들이기에 자랑스럽습니다.

순교성인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그분들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 놀라워하곤 합니다. 살아계시는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셨던 분들입니다. 권력과 명예를 잃고 지독한 형벌에 처했음에도 주님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셨습니다. 조정과 성의 높은 관직에 있었던 분들도 주님을 위해 권력과 명예를 버렸습니다. 주님을 위해 자신의 사회적 기득권을 포기했고 목숨까지도 버렸습니다.

베트남의 유일한 성녀이신 아네스 레 티 탕 성녀도 연약한 어머니이며 아내이셨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거하기 위해 그 지독한 형벌을 감내했습니다. 토마스 쩐 반 티엔 성인은 당시 젊은 신학생이셨고 밝은 미래를 주겠다는 유혹을 거부하고 주님의 믿음을 위해 청춘과 목숨을 바쳤습니다.

저희 집안에도 세분의 순교 성인이 계십니다. 저는 베트남 가톨릭인의 한 사람으로써, 그리고 순교 성인의 8대 후손으로써 제 혈관 속에 흐르고 있는 그 분들의 순교정신을 느낍니다. 그 분들의 아름다운 삶과 용감한 죽음을 본받아 나도 그와 같이 아름답게 살고 진리와 그리스도를 위해 용감하게 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과연 그 분들처럼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은 종교활동을 금지하고 박해하는 과거 절대 왕권의 시대가 아닙니다. 이제 더 이상 종교를 위해 희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그분들의 삶의 정신을 본받아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종교 때문에 잡히고, 종교 때문에 죽는 고난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시련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인한 시련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과 가족의 발전과 성공을 바라고, 자신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기에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욕구는 점차 커져만 갑니다. 분명 오늘 우리가 버는 돈은 예전보다 훨씬 많고,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예전보다 훨씬 편리한 것들입니다. 더 좋은 차와 더 좋은 집, 더 편리한 시설들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마음은 텅 비어만 가기에 점점 더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남을 배려할 여유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고 약한 사람은 더 약해지고, 마음의 상처를 받는 사람은 더욱 아파하고 있습니다. 극도의 개인주의가 판을 치는 경쟁 사회에서 그들은 점점 소외되고 있습니다.

복음의 정신으로 살기 위해서, 나보다 덜 행복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도와줘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둘째. 날로 발전하는 시장경제로 인한 시련입니다.

돈이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말았습니다. 돈이 사람의 모든 생활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부를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고, 마약을 팔고, 부정부패를 하는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 있습니다. 돈은 세상의 가치를 파괴시킴은 물론 인간의 본질까지도 변질시키는 유혹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이와 같은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욕구와 돈의 유혹에서 벗어나서 믿음을 유지하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복음의 정신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 밖에 없습니다. 비록 가난하더라도, 부정한 돈을 탐내지 말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믿음을 버리면 안됩니다. 생계를 위해 불의와 결탁하는 등 쉬운 방법을 택하지 말고 비록 그 길이 힘들더라도 복음과 주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지금 이 사회에는 날마다 새로운 시련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과 복음의 정신에 충실히 살기 위해서는 굳은 믿음으로 주님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주님의 길을 선택한다면 예상치 않는 많은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릅니다. 그 어려움은 또한 형벌과 같은 고통일 것입니다.

그 옛날 성인들은 주님을 위해 한번의 선택이 필요했겠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여러 번의 선택이 필요합니다. 그 옛날 주님을 위해 희생하신 성인들은 마지막으로 한번의 선택과 죽음을 맞이하셨지만, 지금 우리들은 욕망을 추구하려는 마음과 포기하려는 마음의 투쟁으로 매 순간 순간 선택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지금 우리가 복음의 정신으로 산다는 것은 믿음을 위한 끊임없는 희생의 과정입니다. 종교를 위하여 사는 것은, 종교를 위하여 죽는 것만큼 아름답고 용감한 것입니다. 종교를 위하여 사는 것은 종교를 위하여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님에 대한 복음의 증거가 될 있으므로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믿음의 증거가 되기 위하여 순교하신 베트남 성인들이여!

당신들께서는 그 옛날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과감하게 자신의 귀한 피와 목숨을 희생하셨습니다. 모든 성인들이시여, 우리가 생활 속에서 주님 말씀의 증거가 될 수 있도록, 복음의 정신으로 살고 과감한 희생을 할 수 있게 도와 주소서.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오늘날, 주님을 증거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2. 지금 믿음의 생활은 어떤 시련을 맞고 있습니까?

3. 현대 사회의 순교란 무엇이고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합니까?

4. 순교 성인들이 계심에 무한한 자랑스러움과 기쁨을 느낍니다. 그분들의 순교의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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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허니리니 | 작성시간 16.11.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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