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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엣대주교님묵상

무덤의 문을 열다(사순 제5주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17.04.02|조회수195 목록 댓글 0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무덤의 문을 열다(사순 제5주일)


복음 요한 11,1-45

그때에 <1 어떤 이가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는 마리아와 그 언니 마르타가 사는 베타니아 마을의 라자로였다. 2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린 여자인데, 그의 오빠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리아와 그 언니 마르타가 3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듣고 이르셨다.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5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셨다.
6 그러나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르셨다. 7 예수님께서는 그런 뒤에야 제자들에게, “다시 유다로 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8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 바로 얼마 전에 유다인들이 스승님께 돌을 던지려고 하였는데, 다시 그리로 가시렵니까?” 하자, 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낮은 열두 시간이나 되지 않느냐? 사람이 낮에 걸어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어디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10 그러나 밤에 걸어 다니면 그 사람 안에 빛이 없으므로 걸려 넘어진다.” 11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이어서,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2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그가 잠들었다면 곧 일어나겠지요.” 하였다. 13 예수님께서는 라자로가 죽었다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그냥 잠을 잔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14 그제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분명히 이르셨다. “라자로는 죽었다. 15 내가 거기에 없었으므로 너희가 믿게 될 터이니, 나는 너희 때문에 기쁘다. 이제 라자로에게 가자.”
16 그러자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가 동료 제자들에게,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하고 말하였다.>
17 예수님께서 가서 보시니,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벌써 나흘이나 지나 있었다. <18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에서 열다섯 스타디온쯤 되는 가까운 곳이어서,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28 이렇게 말하고 나서 마르타는 돌아가 자기 동생 마리아를 불러, “스승님께서 오셨는데 너를 부르신다.” 하고 가만히 말하였다. 29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얼른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30 예수님께서는 마을로 들어가지 않으시고, 마르타가 당신을 맞으러 나왔던 곳에 그냥 계셨다.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으면서 그를 위로하던 유다인들은, 마리아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그를 따라갔다. 무덤에 가서 울려는 줄 알았던 것이다.
32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서 그분을 뵙고 그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마리아도 울고 또 그와 함께 온 유다인들도 우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셨다.
34 예수님께서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하고 물으시니, 그들이 “주님, 와서 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36 그러자 유다인들이 “보시오, 저분이 라자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하고 말하였다. 37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몇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저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해 주실 수는 없었는가?” 하였다.
38 예수님께서는 다시 속이 북받치시어 무덤으로 가셨다. 무덤은 동굴인데 그 입구에 돌이 놓여 있었다. 39 예수님께서 “돌을 치워라.” 하시니,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타가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였다.
40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41 그러자 사람들이 돌을 치웠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42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여기 둘러선 군중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43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44 그러자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45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미국의 9.11사태는 세계인을 경악시켰습니다. 단 몇 분의 짧은 순간에 거대했던 쌍둥이 빌딩은 무너져버리고 그 곳은 수 천명의 생명을 묻어버린 공포의 무덤이 되었습니다. 빌딩이 무너져 내린 그 순간부터 그 곳은 강대국 미국의 상징이 아니라 테러의 상징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가족과 친지들의 탄식의 무덤이 되어있습니다.

무덤이라는 곳은 꼭 닫힌 암흑을 의미할 뿐 아니라 증오와 원한, 잔인한 죽음을 의미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무덤이란 곳은 생명은 물론 희망과 믿음까지도 묻어버리는 곳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의 무덤을 열어 주심으로서 인간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의 문을 열어주셨다는 것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문이 열렸습니다.

죽음의 세계인 무덤의 문을 연다는 것은 곧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연다는 것입니다. 무덤에 들어가는 사람은 모든 희망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문으로 들어간 라자로가 생명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꽉 막힌 죽음의 무덤을 무너뜨리고 생명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라자로의 몸을 묶고 있는 죽음의 천과 수건을 풀어주시어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믿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마르타는 당시 많은 유다인들처럼 모호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라자로가 새 생명을 얻는 것을 목격한 후, 확실하고 구체적인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유다인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라자로가 죽음의 세계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본 후 믿게 되었습니다. 라자로의 무덤을 꼭 막고 있던 돌들이 부숴질 때, 그들의 마음을 가로막고 있던 돌무덤도 같이 부숴졌기에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쁨의 문이 열렸습니다.

죽음은 슬픔의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무덤에는 헤어짐과 상실, 실패, 고통, 슬픔이 가득합니다. 슬픔은 다른 사람 또한 슬프게 만들고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 맺힌 눈물은 나의 눈을 쓰리고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끊이지 않는 슬픔과 눈물을 멎게 하셨습니다. 라자로가 무덤에서 나와 일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환희의 기쁨에 벅찼고 슬픔과 절망의 장례식은 즐거운 연회가 되었고, 슬픔을 나누었던 말들은 기쁨을 주고 받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슬픈 장례식을 기쁨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새 생명을 얻는 기쁨이야말로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완벽한 기쁨입니다.

희망의 문이 열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운명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육체의 죽음에 얽매이지 않고 새 생명의 세계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죽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기 위해 태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은 “생명”이시고, “이것을 믿는 이는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마르고 시들어 죽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꽃을 피기 위해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무덤에 갇혀있습니다. 죄의 무덤, 탐욕의 무덤, 이기심과 편견의 무덤, 쾌락의 무덤, 시기와 증오의 무덤, 가난의 무덤에 갇혀있습니다.

어둠의 무덤에서 혼자 힘으로는 빠져 나올 수 없기에 주님께 의탁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억압하고 짓누르는 무거운 돌무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 나를 보살펴 주시고 풍요로운 영혼의 세계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주님과 같이 형제와 이웃을 가로막고 있는 무덤을 허물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새 생명을 얻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평안한 영혼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말씀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나를 억압하고 있는 무덤은 무엇입니까?

2. 이웃과 형제들을 묻기 위해 쌓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3. 나와 형제의 무덤을 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4. 예수님께서는 사흘만에 라자로를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무엇을 느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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