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키엣대주교님묵상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보다(부활 제2주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17.04.23|조회수169 목록 댓글 1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보다(부활 제2주일)


복음 요한 20,19-31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사도 토마스에 대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의심이 많은 사람, 증거를 눈으로 봐야만 믿는 고집스런 사람”

이 말에는 조금은 부정적인 시각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토마스의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더 명확하게 믿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절망에 빠져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여인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지만 믿을 수 없었기에 두 순례자는 마을을 떠나 엠마오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여러 번, 여러 장소에 나타나셔야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비록 주님을 만나고 눈으로 보면서도 스승님의 부활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도 감히 이런 생각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토마스만이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이로 인해 사람들은 그를 “의심 많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토마스는 직접 보고 듣고 만져본 것, 경험한 것만 믿는 그 시대 사람들의 특성을 대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토마스의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의 옆구리와 손의 상처를 직접 볼 수 있었기에 예수님의 부활을 일고의 의심 없이 확실히 믿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므로 우리는 그 분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사도 토마스로 인해 예수님께서는 한번 더 발현하셨고 예수님의 마지막 축복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사도 토마스가 예수님의 옆구리와 손바닥의 상처를 보여 달라고 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선교의 방향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말 또는 이론뿐인 실제와 먼 약속들은 더 이상 믿지 않습니다. 좋은 이론은 반드시 좋은 결과로 검증되어야 합니다. 좋은 말은 일이 잘되어 결과가 좋을 때만이 가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증거하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열심히 성경을 읽고, 성실히 미사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생활 면에서도 타인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교회 안에서 서로가 분열된다면 어찌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존중하겠습니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권력을 탐하고, 자신의 양심을 팔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유린한다면 어떻게 이웃에게 주님을 믿으라고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한다면 어떻게 그리스도가 좋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날 저는 한 작은 마을의 사목회 모임에 갔습니다. 20년 전에 그 마을에는 지금 사목회장을 하는 분만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 주민의 대부분인500세대 이상이 주님을 믿고 있습니다. 매년 부활절과 성탄절에 세례를 받는 사람이 20명 이상이 된다고 합니다. 저는 그 분께 어떻게 전도를 하였기에 이런 놀라운 결과가 이루어졌는지 여쭤봤습니다. 그 분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실 별거 없었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그냥 저희 집을 보고 나를 따라 주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최근 들어 부부의 불화, 자녀의 탈선, 가정 폭력 등으로 해체 위기에 처해있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지만 그 분 가족은 부부가 서로 존중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형제는 서로 감싸고 사랑하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는 이웃사람들은 “저 집은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저렇게 행복한 것 같아” 하고 생각하며 그들도 주님을 따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웃들은 여러분의 가정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생활을 하고 있다면 다른 선교가 필요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일부러 주님을 믿으라고 설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바른 생활 자체가 가장 귀중한 선교이기 때문입니다. 박애와 평등의 정신이 가득한 생활, 인내하며 참고 기다릴 줄 아는 겸손과 사랑의 삶이야말로 어떤 아름다운 말보다 설득력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예수님의 고난을 보고 사도들의 믿음도 흔들렸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들처럼 나의 믿음도 흔들립니까?

2. 좋은 말과 좋은 일을 하는 것,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습니까?

3. 지난 부활절에 어떤 선교를 하였습니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오늘희망 | 작성시간 17.04.23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