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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엣대주교님묵상

주님의 길(부활 제5주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17.05.14|조회수209 목록 댓글 1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들의 문(부활 제4주일)


복음 요한 14,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과학문명이 발달된 오늘 날에도 인류 기원에 대한 궁금증은 명확히 풀리지 않았습니다. 삶의 의미 또한 그렇습니다. 삶이란 이런 것이라고 명확하게 설명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갈림길에서 어느 길이 좋은 지 망설입니다. 그리고 또 후회합니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해서 인간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내려왔으며 당신의 삶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며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께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그 길은 오직 하나,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그 길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바른 길입니다. 그 길을 열어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며 그분이 바로 길이시며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을 열어주신 분이십니다.

세상 모든 길은 반드시 그 길을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물리적인 길은 개척의지를 가진 모험심 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생겨났습니다. 그 길들은 기술이 발달한 지금 점점 더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창조적인 사고와 재능, 풍부한 상상력으로 예술적 철학적 사고의 길을 만들어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만들어 준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하늘로 오른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분께서 직접 땅으로 내려오셨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분은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오셨기에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돌아가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집에 우리를 위한 자리도 마련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늘은 바로 인간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고향인 하늘은 바로 우리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하늘나라는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고 싶어하는 세상입니다. 그곳에 도달하는 길을 예수님께서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길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을 열어주셨고 그 분이 바로 길이십니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과 함께 가야만 합니다. 마치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처럼, 예수님 안에 내가 있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그분의 길을 따라 가야 합니다. 마치 작은 나뭇가지가 나무줄기에 매달려 나무의 생을 사는 것과 같은 이치이며, 빵과 포도주가 육체에 스며들어 그 육체의 일부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의 본성이 예수님 안에 있는 인류의 본성과 결합된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 안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 안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그 분과 함께 가야 합니다. 그리고 내 몸 안에 그분의 모습을 지니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분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요한 14,9) 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나의 몸 안에 그 분이 계실 때만이 사람들이 나를 통하여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은 아주 멀고 힘든 길입니다. 아마 평생을 가도 도달할 수 없는 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가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고, 아버지 하느님과 하나되기 위해 당신의 뜻을 버리신 것처럼 우리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과 완전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뜻을 버림으로써 그분과 하나되는 그때야말로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당신의 길 안에서 살아가야 함을 알게 하여주소서.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예수님이 가신 겸손과 온유함의 길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2. 나는 지금 예수님과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길과 멀리 떨어진 다른 길을 헤매고 있습니까?

3. 예수님의 길을 따라 가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길을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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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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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마리아. | 작성시간 17.05.14 신부님!
    "양들의 문(부활 제4주일" 아니고 5주일입니다..ㅎ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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