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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엣대주교님묵상

2015년 7월 26일 연중 제17주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15.07.23|조회수289 목록 댓글 5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자비의 마음을 알려 주신 주님 (2015. 7. 26)


복음 요한 6,1-15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Early edition 이라는 영화의 주인공 Gary Hopson은 어느 날 아침 다음날 조간 신문을 받아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누가 이런 것을 보내는 지 어리둥절했지만 미리 받은 신문의 경제면 뉴스를 보며 다음 날 상승할 주식을 사기 시작하게 되고 돈을 벌게 됩니다. 그런데 가판대에서 신문을 팔며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 주었던 친구가 큰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이 사건 역시 신문에 실려있었지만 그는 보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의 사고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죄책감과 회의에 빠져 있는 그에게 다른 친구가 조언을 합니다. 내일 발생할 사건을 미리 알고 그 불행을 당할 이웃을 도와주면 어떻겠냐고.. 처음에는 그럴 책임이 없다고 거부했지만 따뜻한 영혼을 가진 그는 그의 말을 실행합니다. 다음 날 신문에 나온 사건의 주인공을 어떻게 하면 도와주어 불행을 막을 수 있는 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사고를 당할 그 사람을 찾아 나섭니다.

그의 용감하고 관대한 정신은 아마도 예수님과 흡사하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지나치지 않으시고 연민과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군중을 보시고 그들을 외면할 수 없으셨습니다. 당신께서 그들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돌봐야 할 책임감을 느끼셨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황량한 산이고 가게 하나 없었습니다. 만일 가게가 있다 한들 굶주림에 지친 오천 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어찌 다 배부르게 먹일 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을 돌보기 위하여 다섯 개의 빵과 물고기로 그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기도 남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운 마음과 권능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셨고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자비의 마음을 실행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첫째, 동정심은 구체적인 행동(을 수반하여야 합니다)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동정과 연민은 좋은 감정입니다. 그러나 마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구체적인 실천 없이 동정심만 크다면 그것은 형식적이고 위선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또한 동정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만으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며, 실천에 옮기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제 나름대로 많습니다. ‘수줍어서’ 또는 ‘상황이 복잡하여’ 그리고 ‘도와 줄 여건이 안 되어’ 라고 자기 변명을 합니다. 마치 필립보가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 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한 것처럼 이유를 들며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이 일에 동참하도록 하였습니다. 좋은 것을 알면 노력해야 함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력하는 과정에 비록 어려움 있더라도 극복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동정과 연민은 구체적인 행동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황량한 사막에서 빵과 물고기를 찾아 나서야 했고 작지만 자신들이 찾은 것들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적은 음식이었지만 군중 모두에게 나누어주어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지시로 남은 부스러기를 모았습니다. 이로써 제자들은 예수님이 일으키신 기적에 작으나마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둘째, 주님의 사업에 동참(협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당신의 자녀인 우리가 당신의 사업에 동참(협조)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분께서는 돌을 빵으로 만드실 수 있는 권능을 가지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가지고 있는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으셨습니다. 아이가 기여한 일은 아주 작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것이었기에 그것을 통해 주님께서는 당신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에 아이의 작은 협조를 통해 큰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이렇듯 주님께서는 하찮게 여겨질지라도 우리의 작은 내어놓음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기적의 은혜의 시작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일을 하시게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방관자가 아닙니다. 작은 힘일지라도 주님의 사업에 협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프랑스 속담에 "스스로를 돕는 사람을 하늘도 돕는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사업에 우리의 협력과 동참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어떤 것을 간절히 원할 때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일의 시작은 반드시 사람들의 노력에 의한 시작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은 하느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아이의 관대함을 되새겨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마 그 아이는 황량한 사막에서 굶주린 사람들에게 빵을 비싸게 팔아 이득을 챙길 수 있는 지 알아보러 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너그럽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이러한 관대함의 시작이 예수님께서 수천 명의 배고픈 사람을 돌볼 있는 기적을 베푸시는 데 기여한 것입니다.

셋째, 절약해야 합니다.

기아와 풍족, 부족함과 낭비, 이것은 세상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정반대의 현상입니다. 풍족할 때 사람들은 쉽게 낭비합니다. 군중들은 조금 전까지도 배고픔에 허덕였지만 풍족해지자 먹고 남은 빵을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남은 조각을 모아오도록 이르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아끼고 절약해야 함을 가르치시고자 하심입니다.

절약이란 주님이 주신 것에 대한 존중입니다. 절약은 다른 사람들의 것에 대해 인식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낭비한다면 다른 형제들은 부족할 것입니다. 절약은 모든 인류를 위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빈곤은 자원부족으로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고르지 못한 분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고 가진 자들의 낭비와 지나친 소비 때문입니다.

넷째, 육체를 위한 양식이 아니라 마음의 양식을 찾아야 합니다

물질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나 물질이 전부는 아닙니다. 물질의 노예가 되어 육체가 무거워진다면 영혼은 날수 없습니다. 육체를 위한 양식은 즉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이나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영적 빈곤을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영적 빈곤은 문화에 대한 빈곤, 도덕적인 빈곤 보다 더욱 큰 빈곤입니다.

사람들의 영적 요구는 갈수록 커져가고 영적인 빈곤도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절실한 때입니다. 인간의 전인적인 발전은 영적인 삶의 향상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속적인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왕으로 추대되는 것을 거부하심으로써 물질적인 속박에서 벗어나셨기에 아버지 하느님의 나라로 돌아가시는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의 기적을 통해 우리에게 자비의 마음을 가르치고자 하셨습니다. 이웃에게 연민의 마음으로 먼저 다가가는 열린 마음을 갖기를 바라십니다. 동정심이 관대한 마음으로 승화되어 이웃을 도와줄 수 있는 구체적 행동의 실천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한 아버지 하느님의 나라로 올라가고자 하는 영적인 갈망을 지니기를 바라십니다. 전인적인 발전이란 하느님의 자녀가 될 때만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도 돌보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주님께 다가 갈 수 있도록 저희 영혼을 고귀하게 하여주소서. 아멘




남딩성 부이주교구( Bui Chu) 교구의 성모마리아 성당


부이주 주교관내 로자리오 정원에 있는 종


부이주 주교관내 로자리오 정원에 있는 성모동상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주님께서 복음을 통해 말씀하고자 하신 것은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2. 나의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절약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분명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어떤 절약을 실천하고 있고 어떻게 나누고 있습니까?

3. 우리는 주님께 따뜻한 밥을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그런데 영혼의 양식도 함께 주실 것을 기도해 보았습니까?

4. 나에게 연민과 동정심은 어떤 행동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게 만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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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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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강민주(요안나) | 작성시간 15.07.24 어제저녁에 저희콘도에서 베트남 청년들이 30여명정도가 베트남 신부님을 초대해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처음에 방을 구하려 베트남 청년이 왔을때도 한국말을 잘하지 못해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는데
    잠시후 제가 없는 동안 객실 옆방을 하나 더 필요하다고 요금을 지불했다고 하는데 (남편에게)
    나중에 알고보니 아마도 고백실로 사용을 했던것 같아요,
    객실 하나 정도는 봉헌하는 마음으로 그냥 빌려드릴껄,,,, 보내고 난 후 밤새 마음이 짠 했습니다,
    취업하러 온 베트남 젊은 청년들이 열심히 돈 벌어서 고국에 가정으로 돌아갈때까지 한국에 있는 동안 영육간에 건강하게 잘 지낼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솔~♣ | 작성시간 15.07.24 언제나 예쁜 마음으로 사시는듯 하네요. ^^*
    오빠분 치료 경과는 어떻게 되어가고 계시는지요?
    좋은 결과 있으면 좋겠군요.
  • 작성자부자아빠 | 작성시간 15.07.25 감사합니다.
  • 작성자스콜 | 작성시간 15.08.15 1.동정 에는 구체적인 행동이 따라야한다
    2.주님의 사업에 협조해야한다
    3.절약해야한다
    주교님의 말씀 다시금 마음속에 새깁니다
    신부님....감사합니다~~~
  • 작성자지윤경 | 작성시간 15.07.29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실천이 중요함을 알고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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