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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엣대주교님묵상

나눔(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17.12.24|조회수171 목록 댓글 0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나눔(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


복음 마태 1,1-25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7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25 그러나 아내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이 추운 성탄절 차가운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께 여쭤봅니다. 매년 더 복잡해지고 험악해지는 이 세상을 향해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유난히 추운 올해,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을 뵈니 홍수와 재난으로 외롭게 떨고 있는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나눔’을 강조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듯 합니다.

나눔은 자선도 아니며 베품도 아닙니다. 나눔은 내게 남은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이 아니며 직위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베푸는 것도 아닙니다. 나눔은 평등한 것이며 내게도 필요한 것을 더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진정한 나눔을 가르쳐 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구원의 권능과 하늘 나라의 주인이신 하느님이시지만 인류와 나누기위하여 인류와 함께 살기 위하여 인간이 되시어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인류에게 나누어주시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신 그 분이야말로 진정 “나눔”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와 나누기 위해 하느님이라는 고귀한 신분조차 버리셨고 아주 작은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심을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과 진정한 나눔을 위하여 인간의 고통을 스스로 맞이하셨습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가난으로 고통 받고 있어 괴롭습니까? 그 분도 지금 빈곤과 굶주림, 추위를 함께 나누고 계십니다.

지금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까? 그 분도 역시 우리의 실패와 배신, 고통과 굴욕 속에 함께 하고 계십니다.

추운 겨울 양과 소의 허름한 우리에서 갓 태어나신 작은 아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정한 ‘나눔’의 메시지를 보내고 계십니다, 아기 예수님은 도움이 필요한 작고 나약한 아기이십니다. 이제 방금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에게는 이 추운 밤을 견딜 소들의 따뜻한 입김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집트로 피신하실 때는 당나귀가 필요하셨고 어린 시절에는 성모님과 요셉성인의 사랑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설교를 나가실 때는 제자들과 함께하셨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다 지쳐 쓰러지셨을 때는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의지하셨습니다.

지금 아기 예수님의 육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나약하고 가난한 모습입니다. 이에 우리의 마음을 열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줄 것을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고아와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 공부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학대와 갈취의 대상이 되고 있는 아이들을 구제할 것을 호소하고 계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잊혀진 사람들의 고단한 운명 속에 함께 계시며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삶 속에 병든 사람의 마른 몸 속에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어쩌면 아직도 실패와 좌절 속에 계시며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빛을 찾고 계실지고 모릅니다.

세상의 많은 재난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일그러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얼굴은 추위에 떨고 있는 창백한 얼굴일지도 모릅니다. 홍수에 떠 밀려가는 지붕 위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채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눈빛을 보내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 눈빛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을 위헤, 우리의 이웃을 위해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우리가 마음을 열고 나눌 때 하느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나눔을 위해 마음을 열면 베들레헴 구유의 아기 예수님께서 답하실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 이번 성탄절에는 이웃과 나눔으로서 아기 예수님 탄생의 신비를 충만히 알게 하여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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