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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엣대주교님묵상

주님곁에서의 안식과 기도 (연중 제16주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18.07.22|조회수138 목록 댓글 2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주님곁에서의 안식과 기도 (연중 제16주일)


복음 마르 6,30-34

그때에 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3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며 마치 ‘목자없이 길을 잃은 양들’처럼 몰려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자신들의 영혼을 채워 줄 영적지도자를 갈망하던 군중들은 이제야 주님과 사도들을 만났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직도 그들처럼 헤매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그들을 푸르른 풀밭으로 되돌려 보낼것이다.

유다인들은 왕과 제사장, 예언자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백성을 통치하고 가르치는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왕과 제사장들은 백성의 바램과는 달리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전락하였기에 백성들로 부터의 신뢰를 잃었고 정신적인 구심점을 잃은 그들은 뿔뿔히 흗어져 버렸습니다. 그러한 시대에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께서는 살아남은 양들을 다시 모아들여 그들이 살던 땅으로 데려오시고, 그들을 돌볼 목자를 세워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가는 길에 비록 길을 잃고 헤맬지라도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인도하여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중재자를 통하여 우리들을 인도하십니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하느님께서 지금의 우리 모습처럼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시대를 망라하여 우리 모습과 같은 영적 중재자를 통하여 모든 시대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인도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목자를 잃은 가엾은 양들

30 년 동안 나사렛에서 지내신 후 예수님께서는 유다 전역을 다니시며 설교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복음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모으고 그 제자들 가운데 12사도를 선택하셨습니다. 오늘 사도들은 복음을 전파한 후 모두들 만족한 결과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군중들이 몰려들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조용한 곳을 찾아가서 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삶과 사도직에서의 휴식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의 결과에 대한 깊은 감동으로 온 몸이 소진된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휴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소명을 마친 후 침묵의 시간과 하느님 곁에서 쉬며 자신을 돌아 볼 시간, 육체가 회복될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의 육체를 돌보는 것이 바로 주님을 돌보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 선교는 주님을 존중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안식을 주신 후 군중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인간을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을 주시기 위해 사도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그 시대의 영적가치를 대변하는 군중들

지도자들이 그들의 소명에 따라 살지 않을 때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는 군중들은 단결이 와해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인간에게는 영적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만일 어느 나라 또는 어느 조직과 공동체에서 단결이 와해되고 있다면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고 소통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교회에 가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교회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태리와 유럽의 많은 교회들은 한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박물관"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미사에 참여하지만 강론을 주의깊게 듣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형식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곳도 있지만 강론의 내용을 좀더 현실적으로 접근하려 노력하지 않기에 젊은 사람들을 끌어 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론에서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삶의 문제를 해결할 영적 에너지를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목자는 자신의 설교가 그 시대의 욕구에 부합하는 것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양들을 인도하는 목자, 그리고 주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이라면 복음을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실천이 아닌 말로만 주님을 따른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도구이므로 겸손해야 합니다. 그 겸손함을 알기 위해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꼭 필요한 것은 활동과 기도입니다. 바쁜 일상속에서 외적활동만 중시하고 기도를 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활동은 기도 속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받고 행한 결과입니다.

지난 활동을 돌아보고 새로운 활동의 지표를 찾을 수 있도록 조용한 곳, 주님 곁에서 휴식을 취하며 기도하십시오. 활동이 우리가 보는 면이라면 기도는 그 이면입니다. 활동과 기도의 양면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인간은 발전할 수 있습니다. 영육간의 조화가 이루어 질 때 비로소 인간의 활동은 가치가 있고 반석 위에 세운 것처럼 견고해질 것입니다.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왜 교회에 가고 있습니까?

2. 나를 위해 주님을 위해 쉬고 있습니까?

3. 복음을 글로만 읽고 있지는 않는 지 돌아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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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한임마누엘라 | 작성시간 18.07.22 아멘
  • 작성자오늘사랑 | 작성시간 18.07.22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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