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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엣대주교님묵상

유혹과 선택(연중 제24주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18.09.18|조회수145 목록 댓글 0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유혹과 선택(연중 제24주일)


복음 마르 8,27-35

그때에 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28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29 예수님께서 다시, “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0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34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3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1980년대 제작된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은 많은 종교단체로부터 지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행복하고 평범한 인간의 행복을 꿈꾸는 예수님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그 유혹을 극복하는 과정을 묘사했기 때문에 작품성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름다운 여인Madalena는 멋지고 의욕적으로 살아가는 청년 예수를 만나 사랑하게 되지만 예수님은 그 사랑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끝내는 그녀와 헤어져 영원한 행복을 전파하기 위해 떠납니다. 그분의 복음을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따르자 제사장등은 정치적인 사상에 반한다는 이유로 십자가 형을 선고합니다. 십자가 형틀에서 의식을 잃은 순간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되고 그 곳에서는 아름다운 여인 막달레나를 만나 자신의 길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와 함께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행복과 안락함에 취해 있는 예수님을 향해 제자와 신자들은 강하게 비난을 합니다. 그 순간 의식이 돌아온 예수님은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 머리를 흔들며 마지막 숨을 거둡니다. 인간적인 유혹을 물리치고 고난과 거룩한 죽음을 맞이하심으로써 부활을 맞이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작자는 예수님을 인간적면으로 접근하여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 묘사하였습니다. 태어나고 자라며 초년의 사랑에 흔들리는 많은 보통의 사람들과 같이 예수님 또한 많은 유혹에 시달리고 방탕한 세상을 하지만 끝내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따르기 위해 자신의 길을 포기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의지, 인간의 고귀함일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실에서는 그러한 가치를 지키고 실현하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제와 다르지 않고 오늘도 안락함을 위해 돈이 필요하고 지위가 필요합니다. 그러면서도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내가 가진 것은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 길은 우리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물질적인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삶은 존경하지만 그분의 이상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풍요롭게 도와주지 않습니다. 때로는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 계명이 나를 괴롭힐 때도 많습니다. 많은 유혹들을 우리는 당연히 받아들이며 그것이 나의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유혹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 나의 선택이 나의 길, 주님을 따르는 나의 길에 과연 올바른 것인지를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은 많은 오해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구세주는 하늘의 구름을 뚫고 내려오는 높은 권능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 달리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느님과 제자들에 대해서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따르기만 하면 주님의 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아들을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녀에게 어떠한 권위와 직책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당신이 마실 잔을 마실 것”이라는 것만을 약속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로부터 여론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이 당신에 대해서, 또 당신의 구원사업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느끼시고 그들에게 구세주가 바로 하느님의 아들인 당신이고, 당신이 가야 하는 길은 바로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 또한 당신은 참혹한 고통과 고난, 치욕을 겪고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당신의 제자가 되려면 반드시 당신이 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겠다고 달콤한 약속을 하는 데 왜 오직 주님께서만 그와 반대로 당신의 고난의 십자가 길을 약속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주님의 참행복은 이 세상의 짧은 행복이 아닌, 영원한 행복이기에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멸되지 않는 영원한 행복, 참 행복의 영광을 맞이하기 위해 많은 수고와 고난을 감수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큰 고통은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이 땅의 인간이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이며 참 행복을 얻는 길입니다. 바로 예수님 당신께서, 스스로 고난의 십자가의 길을 가심으로써 부활하셨고 참 행복에 도달하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오늘 주님의 말씀은 참으로 받아들이고 행하기 어려운 말씀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이며, 영원한 생명과 행복의 길로 이르게 하는 오직 한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헛된 약속으로 우리를 기만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가신 바른 길만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오직 주님 당신의 자녀들이 진정한 용기와 실천으로 하늘나라의 참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주님, 저희가 자신의 의지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나의 선택이 때로는 잘못된 선택, 유혹이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2. 주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어떤 어려움을 겪을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3. 주님의 고난과 치욕스런 죽음은 무엇을 위해서라고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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