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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엣대주교님묵상

겸손한 세례(주님 세례 축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19.01.13|조회수169 목록 댓글 0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겸손한 세례(주님 세례 축일)


복음 루카 3,15-16.21-22

그때에 15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21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이 지구상에는 매년 끔찍한 홍수로 인해 수 많은 인명피해가 일어나고 가옥과 농작물 등이 파괴됩니다. 물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수십 년 안에 심각한 물 부족 현상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후 변화로 인해 강수량이 줄고 가뭄으로 인해 동식물은 물론 인간의 삶도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이처럼 물은 인간의 삶을 파괴하지만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것입니다. 주님 세례 축일은 세례자 요한에 의해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미사입니다. 요르단 강에 침수하여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의 세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근원이 되는 세례 성사의 기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기 위해 요르단 강에 발을 들여 놓으신 뜻은 지리적으로 사회적, 심리적으로 가장 깊은 곳 즉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심을 의미합니다. 원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과 하나 되기 위해 그들과 함께 줄을 서고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그들의 형제 자매가 되셨습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

세례자 요한이 요르단 강에서 준 세례는 단지 참회 일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세례를 통해 세례는 죄를 씻는 참회와 믿음을 가진 자로 새로 태어나는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통하여 과거의 잘못을 씻고 주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남으로써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사는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배 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주 삼위 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인간도 주님의 아들이 되어 하느님이 거하시는 성전에 머무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자비로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의 공 생활이 시작되었고 복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 요르단 강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미 사람의 모습과 인간의 옷을 입으셨지만 인간들과 진정한 형제애를 나누고자 그들과 함께 아래로 내려가셨습니다. 그들과 같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당신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장애를 씻어버리고 진정한 형제 자매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깊은 겸손함으로 자신을 씻으셨습니다. 겸손이야말로 진정한 세례입니다.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 깊이 내려가신 것은 죽음과 고통을 받아들이신 것을 의미합니다. 죽음은 바로 세례입니다.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을 다 겪어낼 때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모른다.”

예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증거는, 나약하고 가난한 어린 아기로 태어나신 것과 한 없는 겸손으로 사람들과 함께 요르단 강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은 예수님을 더욱 깊이 내려가도록 하였고 물로써 하느님과 인간과의 벽을 없애는 참회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분의 겸손함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만일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낀다면 주저하지 말고 당신의 삶을 바꾸도록 노력하십시오. 주님께 다가가고자 한다면 예수님의 겸손한 세례를 실천하십시오. 비록 예수님과 같은 치욕스런 죽음의 세례를 받을 수는 없겠지만 겸손의 세례는 받을 수 있습니다. 회개의 눈물로 나의 죄를 씻고 겸손의 강물에서 나의 몸을 씻고 새로이 거듭나십시오. 다윗 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겸손한 참회야말로,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시작입니다. 겸손한 참회는 바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 효성스러운 아들로 사는 것입니다. 겸손해져야만 자녀를 기다리는 인자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이신 예수님께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희는 나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이다. 너희가 돌아온 것을 기뻐한다”

주님, 저희가 겸손한 마음으로 참회하고 주님께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주님께서 한없이 낮아지신 것처럼 나도 낮아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상대방이 나보다 낮추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2.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3. 이미 세례를 받았지만 날마다 예수님의 겸손한 세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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