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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엣대주교님묵상

나눔의 행복(연중 제26주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19.09.29|조회수154 목록 댓글 3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나눔의 행복(연중 제26주일)


복음 루카 16,19-31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한 귀족 소년이 스승과 같이 아버지 소유의 논길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밭을 갈고 있는 소작인들을 놀려주고 싶어 논두렁에 벗어놓은 장화를 감추려고 했습니다. 스승이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장난으로 하지만 그것은 가난한 농부들을 슬프게 하는 일이니 그러지 말고 농부들이 허리를 한번씩 구부려 밭을 갈 때 마다 장화에 은화 한 닢씩 넣어준다면 소작인들이 좋아할 것 같은 데 우리 숨어서 지켜보자” 소년은 스승의 가르쳐준 데로 농부들이 허리를 구부릴 때마다 장화에 은화 한 닢을 넣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농부들은 장화를 가지고 와 신으려고 하는 순간 장화 안에 있는 돈을 발견하고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그러나 지쳐있던 그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떠 올랐고 행복에 넘쳐 하늘을 바라보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돈을 넣어준 익명의 은인에게도 하느님께서 축복을 내려주실 것을 기도 드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소년은 벅찬 행복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큰 축복입니다”

나눔은 축복입니다. 많이 나눌수록 더 많은 덕을 쌓는 것입니다. 나눔을 아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과 나눔을 아는 관대한 사랑을 지닌 사람이 바로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고귀한 소년은 한 번의 나눔을 통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금 수저로 태어난 귀족 소년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니 내가 원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줍니다. 나로 인해 타인이 갖는 박탈감이란 걸 상상도 못하는 소년이었지만 그는 단 한 순간 깨달았습니다. 내가 가진 걸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내가 타인에게 준 행복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것이 나눔의 가치이며 세상의 가치, 그리고 진정한 행복입니다. 한번 나눌 때마다 다음 생애를 위한 선물이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가난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나눠줄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자와 가난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나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나의 작은 것을 나눌 때 가진 자의 나눔보다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가난하다고 나누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평생 나눔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 곶간에는 채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인류공동의 연대는 이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연대는 타인과 나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절박한 임무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공동체의 삶을 통감할 때 세상 모두는 비로소 복음의 길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돈이 많다는 것이 지옥으로 떨어져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까?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내 힘으로 힘들게 번 돈을 내가 쓰는 것도 잘못입니까? 부자가 잘못된 것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가진 것이 죄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가진 것으로 이웃을 도와 영원한 친구를 만들고 그 친구의 도움으로 영원한 세계로 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원하지 않은 세상의 돈의 가치를 영원한 가치로 승화시키는 방법입니다. 돈이란 그 가치를 알고 사용할 때 긍정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돈을 탐내는 많은 유혹을 받게 될 것입니다. 돈은 사람의 정신을 옭아매는 끈입니다. 돈에 유혹된 마음은 끈에 묶인 새와 같아 멀리 날 수 없습니다. 성경에 신앙의 길을 가려는 청년에 대한 비유가 있습니다. 청년은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예수님께 여쭤봤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묶인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한 걸음도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의 길을 포기하고 익숙해져 있는 평범한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스스로 그 줄을 잘라버리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부자들은 쉽게 자만심에 빠져 도움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웃에게도 관심이 없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부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가파른 숨을 쉬며 고통과 굶주림을 호소하는 나자로가 바로 자기 집 대문 앞에 누워 있었지만 그는 외면했습니다. 라자로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떨어진 빵 조각을 찾을 때, 부자는 아무 생각 없이 남은 빵 조각을 휴지통에 버렸습니다. 무관심과 이기심이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공동체 안에서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묶여 있는 공동운명체로서 소외되는 이웃이 없도록 모두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소외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길입니다. 관심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의 불행에 공감하고 그 마음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주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주님, 이웃 형제들의 모습에서 주님을 볼 수 있도록 저희 눈을 뜨게 하여 주소서. 고통 받는 이웃의 탄식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저희 귀를 열어주소서. 그리고 그들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저희 마음의 문을 열게 하여 주소서.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내가 가진 부의 가치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2. 지나친 자유와 풍요로운 생활은 영혼을 빈곤하게 합니다. 풍요로운 영혼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합니까?

3. 지금 바로 나눔을 실천해보십시오. 그리고 그 나눔이 주는 행복을 꼭 간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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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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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hongsoya | 작성시간 19.09.29 나눔의 실천이라 나의 고통을 내안의 주님과 나눌수 있을까요?
    내 가족 이웃 모두 고통받는 이웃들과 십시일반으로 함께 나눠지고 삶을 살리라! 아멘!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19.09.3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nordic | 작성시간 19.10.02 아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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