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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엣대주교님묵상

구원을 청하는 믿음(연중 제28주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19.10.13|조회수198 목록 댓글 2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구원을 청하는 믿음(연중 제28주일)


복음 루카 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개를 좋아합니다. 은혜를 아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개가 감사를 표하는 모습은 사람과 다르지만 그 정도는 사람에 비해 부족하지 않습니다. 개에게 먹이를 주면 꼬리를 흔들며 감사를 표하고 온 힘을 다해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감사를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이 이야기에 동감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을 잘 읽어보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병 환자 열명이 치료를 받고 몸이 깨끗해졌지만 단 한 명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무리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목격했지만 그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며 힘들어하실 때 기적을 목격하며 열광했던 그들은 예수님을 외면하고 조롱했습니다. 오직 키레네 출신 시몬만이 그 무거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주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눈에서 흉악한 도둑에게까지 사랑의 눈길과 그를 위해 간절한 기도를 하시는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을 본 사람은 그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유일한 민족, 유대인은 은혜를 망각하고 배신의 역사를 쓴 사람들입니다. 시나이 산 기슭의 황금 소는 인간의 내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유대인들이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열광하는 것은 다시금 노예의 삶이었던 이집트를 그리워하는 감사를 모르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줍니다. 지금 오늘날 우리에게 금송아지는 과연 무엇입니까? 과거의 어리석음은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저지르는 가장 많은 죄는 감사를 모르는 배신입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은 사람과의 소통이 필요합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 덕분에 지금 이렇게 성장했고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돈, 집, 능력, 건강, 시간 등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감사를 드려야 하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매일같이 두 천사를 땅으로 내려 보내 인간의 기도를 받아가십니다. 두 천사는 각자 청원과 감사의 바구니를 들고 내려오는 데 다시 하늘에 올라갈 때는 청원바구니는 가득 차 넘치는데 감사의 바구니는 빈 바구니로 올라갑니다. 하느님께서 천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인간들은 받는 것에는 익숙한데 주는 건 잘 모른다. 그들은 언제나 이걸 주십시오, 저걸 주십시오 하는 기도를 하지만 정작 은혜를 베푼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돈 보스코 성인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이 계시는 곳은 두 곳입니다. 하늘나라와 인간의 감사하는 마음 속에 머물고 계십니다.”

어느 회사에서 ‘죄송합니다’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자는 캠페인을 벌였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감사를 모르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을 모르는 것은 심각한 병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기적이고 쾌락을 즐기며 감사를 모른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훼손하는 행동입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어느 마을에 이웃을 열심히 돕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병원에 있는 친구를 주저하지 않고 돌봐주었고 가족을 잃은 흑인 친구에게는 마음을 열어주었습니다. 자선행사에서는 아낌없이 자신이 낼 수 있는 만큼 후원을 하였습니다. 그의 도움이 필요한 곳은 어느 때를 막론하고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이웃 사람들은 천사 같은 사람이 총으로 자살을 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적어놓은 일기는 사람들에게 반성과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의 일기에는 “나는 모든 사람을 생각했지만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모든 사람을 친절히 대하려고 노력했지만 나에게 친절로 답한 사람은 없었다. 내가 받은 유일한 것은 감사를 모르는 싸늘한 배반뿐이었다.”

감사는 믿음의 표시입니다.

‘주님 구원의 은총’은 특정한 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믿음으로 맞이하여야 합니다.

믿음을 호소하는 두 가지 모습은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고 소리 높여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사제에게 보여주기 위해 떠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즉시 치유의 은사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하고 이르셨습니다. 그들은 치유된다는 믿음을 지니고 길을 떠났기에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습니다. 그들 자신의 믿음이 바로 자신을 구원한 것입니다.

믿음의 기쁨이란 주님과 인간과의 친밀함 속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입니다. 오직 주님과의 친밀함이 유지될 때 인간이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있고, 주님과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행복과 기쁨의 근원입니다. 열 명중 한 사람만이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며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기쁨의 근원, 새 생명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다시 돌아와 주님께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로써 그의 기쁨은 영원한 기쁨이 되고 그의 삶은 영원히 멈추지 않는 감사의 삶이 되었습니다.

주님,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감사 드리는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을 찾게 하여주소서.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이 진정한 행복을 주는 시작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구원의 은총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보십시오

2. 구원을 청하는 믿음과 주님을 만나는 믿음은 무엇이 다릅니까? 믿음의 근원을 찾기 위해 떠나보았습니까?

3. 생활 속에서 감사함을 깨닫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영적인 생활에서도 감사의 의미를 깨닫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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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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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nordic | 작성시간 19.10.13 아멘, 감사합니다 ♡♡♡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19.10.13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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