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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엣대주교님묵상

겸손한 기도(연중 제30주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19.10.27|조회수220 목록 댓글 6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겸손한 기도(연중 제30주일)


복음 루카 18,9-14

그때에 9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오늘 복음은 간결하고 짧은 문장이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얻은 사람은 평소 존경 받던 바리사이가 아니라 업신여김을 받던 세리였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가 주님께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기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크고 작은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업무를 하며 자신도 모르게 죄를 짓고,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또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보통 사람입니다. 그들은 습관과 같이 시간이 되면 교회를 가고 죄를 고하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비유를 통해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바른 것인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유다인들에게 율법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바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삶의 지표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율법은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 삶을 구속하는 프레임으로 변질되었으며 종교적 관념과 의식이 바뀌었고 동시에 종교의 본질이 왜곡되고 퇴색된 바리사이와 같은 인물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었고 그 수단은 하느님보다 우선시되었습니다. 바리사이의 기도는 감사의 마음으로 시작되었지만 율법에 따른 생활을 하는 자신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타인은 부정하였습니다. 인간을 사랑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바리사이는 자신의 형상대로 하느님을 만들었습니다.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예의바르게 보이지만 얼마나 거만한 모습입니까? 자신은 누구보다 바르다고 자만하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을 부정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을 수치스럽게 한다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여합니다. 자신은 바른 종교인이라고 생각하고 정의로운 삶, 바른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기에 주님 앞에서 뉘우칠 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자신을 부정하는 사람이야말로 정당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들을 부정하고 공격하고 편을 가릅니다. 주님 앞에서 겸손하지 못한 그들로 인해 사회가 점점 양극화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하느님을 숭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에 의해 주님의 이름이 더럽혀지고,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도 주님의 정신은 말살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겸손은 자만이 아닙니다. 바리사이는 자신은 세상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자만했습니다. 율법에 따른 칭찬을 받기 위해서만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그 원천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 육체의 뿌리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내가 누리고 있는 건강과 행복한 가정 그 모두는 주님께서 주신 은총입니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 역시 주님의 은총입니다. 만일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면 지금처럼 잘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겸손은 사람을 멸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자신의 존재, 자신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절대 다른 사람을 멸시하지 않습니다. 내가 일을 잘하는 것은 단지 나의 처지가 좋았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이 일을 못하는 것은 나처럼 좋은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들을 멸시하지 않습니다. 형제의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형제의 마음으로, 이웃의 어려움을 마치 내 일처럼 도와주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힘이 없고 나약한 죄인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만족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까? 나의 마음 속에 있는 나쁜 것들을 버릴 수 있습니까?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결심을 했습니까? 주님께 얼마나 많은 감사를 드렸는지 알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는지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이 죄인의 신분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겸손입니다. 주님 앞에서 겸손함을 알아야 합니다. 형제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주님께 대한 가장 바르고 성실한 태도입니다.

주님께 구원의 은총을 청하고 겸손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너무도 연약하고 비천한 신분인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가장 좋은 기도는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입니다. 이것은 사도의 우두머리이며, 최초의 사도인 베드로 성인이 일생 동안 끊임없이 했던 기도입니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를 통해, 우리가 주님의 은총을 받는 것은, 마땅히 받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를 통해, 겸손한 기도야말로 주님의 마음을 가장 아름답게 하는 기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나보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있습니까?

2. 겸손한 기도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3. 내가 가장 많이 하는 기도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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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에스델 혜연 | 작성시간 19.10.27 감사합니다
  • 작성자salesiana | 작성시간 19.10.27 고맙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19.10.27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한임마누엘라 | 작성시간 19.10.29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아멘
  • 작성자nordic | 작성시간 19.11.03 아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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