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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엣대주교님묵상

사랑과 책임(연중 제6주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20.02.16|조회수214 목록 댓글 2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사랑과 책임(연중 제6주일)


복음 마태 5,20-22ㄴ.27-28.33-34ㄴ.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선택의 자유는 책임이 따를 때 진정한 자유가 될 수 있습니다. 자유와 책임이야말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복제품과 같은 기계가 아니라 좋고 나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오늘 독서에 ‘그분께서 네 앞에 물과 불을 놓으셨으니 손을 뻗어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라. 사람 앞에는 생명과 죽음이 있으니 어느 것이나 바라는 대로 받으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되 그 목적에 맞게 사용하고 책임을 지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들은 자신의 뜻대로 자유를 남용하였기에 예수님께서 오늘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가장 우선적인 가치인 계명을 우리는 양심에 새기고 그 법에 의해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해야 하며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첫째 계명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실천함에 있어 그 어떤 핑계도 관습도 사랑을 거슬릴 수 없고 용납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만이 부부와 가정, 이웃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을 완성하고 더 높고 고귀한 가치의 법을 세우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구약에서는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신약은 바로 인류 공동체의 보호와 사랑을 위한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에 맞게 행동하고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자신의 위치와 능력을 직시하고 겸손함을 갖는 것입니다.

겸손을 거스리는 것은 오만입니다. 오만한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판단합니다. 우주의 중심이 나이므로 타인의 권리와 품위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만함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함을 느끼지만 겸손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겸양입니다.

겸손한 삶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그 모습 그대로이며 이 땅에 사사며 구현하신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겸손함으로 살아갈 때만이 겸손한 예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행동에 책임을 지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세상의 관념을 따르는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지혜를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님에 대한 감사와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은 우리를 참된 행복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말할 때에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너무나 간단하지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불화와 스트레스가 넘쳐 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예’ 보다는 ‘아니오’를 먼저 합니다. 그리고 ‘아니다’와 '예’를 의도적으로 반대로 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나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사랑했던 부부도 사랑이 식으면 서로에게 미움과 상처만을 주는 관계가 됩니다. 사람들은 공적인 관계의 사람들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쉽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습니다. 가깝기에 그가 나를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 주위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고 고통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준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끼리 서로 상처를 주면서도 같이 살수 밖에 없는 것이 부부이고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보듬어 주고 화해하는 사랑입니다.

우리 인생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외로운 섬이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는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나는 사랑을 받을 수도 있고 사랑을 줄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주고 받을 자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행동에는 책임이 필요합니다. 주님께 받은 사랑을 형제와 이웃에게 나누어 책임입니다.

주님, 생명의 길로 이끄는 주님의 계명을 깨닫고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2. 언제 자유에 대한 책임이 필요하다고 느낍니까?

3.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았습니까? 혹시 내가 그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닙니까?

4.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위해 기도해 보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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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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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0.02.1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nordic | 작성시간 20.02.17 아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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