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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엣대주교님묵상

내 옆의 평범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사순 제3주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20.03.15|조회수184 목록 댓글 4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내 옆의 평범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사순 제3주일)


복음 요한 4,5-15.19ㄴ-26.39ㄱ.40-42

그때에 5 예수님께서는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시카르라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에 이르셨다. 6 그곳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길을 걷느라 지치신 예수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7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8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고을에 가 있었다.
9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사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다.
10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11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두레박도 가지고 계시지 않고 우물도 깊은데, 어디에서 그 생수를 마련하시렵니까? 12 선생님이 저희 조상 야곱보다 더 훌륭한 분이시라는 말씀입니까? 그분께서 저희에게 이 우물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물론 그분의 자녀들과 가축들도 이 우물물을 마셨습니다.”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15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19 이제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시군요. 20 저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네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합니다.”
21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22 너희는 알지도 못하는 분께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께 예배를 드린다. 구원은 유다인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23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24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25 그 여자가 예수님께,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시겠지요.” 하였다. 2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39 그 고을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40 이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르시기를 청하자, 그분께서는 거기에서 이틀을 머무르셨다. 41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 42 그들이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이 한 말 때문이 아니오.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



눈이 나쁠 때 안경을 쓰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안경을 쓴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빛입니다. 믿음의 빛으로 세상의 어두운 곳과 미미한 작은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작은 것을 보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믿음의 주인이신 주님의 눈으로 광활한 하늘의 작은 새와 황량한 들판의 작은 들꽃을 지나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눈은 좋은 것만 쫓아가지만 믿음의 눈은 절망과 불행으로 점점 작아지는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엘리야 예언자 시대에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과 기근이 들자 하느님께서는 엘리야를 이방인들의 지역인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 보내셨습니다. 과부와 아들은 한 줌의 밀가루와 그것을 간신히 구울 수 있을 정도의 기름만이 남았지만 엘리아의 말을 믿었기에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빵을 만들어 엘리야를 대접했습니다. 보잘것없는 작은 빵이지만 그의 믿음의 크기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눈은 새로운 것, 신기한 것에 잘 매혹되고 쉽게 우상화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은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보는 것들을 지나치지 않습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평범하게 태어나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너무나도 우리와 같기 때문입니다.

엘리사 시대에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하여 시리아 사람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는 용맹한 장수였지만 이방인이고 나병 환자였습니다. 사마리아 예언자의 소문을 들은 그는 이스라엘 임금에게 병을 낫게 해 달라고 청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 않고 떠납니다. 그리고 기적을 청하는 태도로는 너무나 평범한 말을 그대로 믿고 요단 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병은 치유되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눈이라도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이 있다면 어디에서든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유리 가가린은 달에 다녀온 후 ‘나는 달의 어느 곳에서도 하느님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달에 첫 발을 내디딘 암스트롱은 달에 도착하자마자 성경을 읽으며 주님께 감사 드렸다고 합니다. 천문학자 뉴턴은 별이 가득한 아름다운 하늘을 보며 ‘나는 방금 나의 망원경을 스쳐 지나가는 하느님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의 자녀라면 주님의 사랑을 전파하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감내해야 합니다.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바로 믿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찾지만 사실 어디를 가야 하는 지 잘 알지 못합니다.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나의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상처받고 절망에 빠진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까? 외로움에 좌절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내 옆의 특별하지 않은 많은 보통 사람들 사이에 주님이 같이 계십니다. 그 평범함 속에서 주님을 발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서로 다르지 않은 모습 속에서 주님을 발견하고 그들을 위해 사랑과 봉사를 한다면 그들 또한 내 안에 계신 주님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믿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 모든 민족과 신앙을 가로막는 장벽과도 같은 거대한 강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뛰어넘어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는 다리, 인간의 삶을 영혼의 삶으로 인도해 주시는 다리이십니다.

우물 옆에서 예수님을 만난 여인은 예수님을 마치 더러운 유대인을 대하듯 경멸의 눈으로 바라봤습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우물을 가진 교만한 여인의 허상은 예수님으로 인해 무너졌습니다. 자신의 절대 가치였던 우물이 더러운 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가족은 영원한 가족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주님이 계시지 않는 성전은 영혼이 없는 위선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교만했던 그녀는 이제 자신은 빈손뿐인 초라하고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겉치레를 걷어내고 벌거벗겨진 자신, 순수한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는 절망의 순간에 그녀는 마음 깊은 곳에서 믿음과 희망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살기 위해 꼭 움켜쥐고 있던 것들이 바로 영원한 생명의 원천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던 장애물이었습니다. 강을 막고 있던 돌들을 하나씩 걷어내자 강물은 다시 세차게 용트림하며 흘러갔습니다.

안락하고 편안함을 주는 터전들이 나를 가두는 감옥인지도 모릅니다. 재물과 욕망, 영혼이 없는 믿음은 장막이 되어 그리스도의 빛을 가로막습니다.

예수님 말씀은 길을 밝혀주는 등불입니다. 그리고 영혼의 세계로 건너가는 다리입니다.

이제 물동이가 없어도 하늘나라의 영원한 샘물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기에 그녀는 세상을 연결해 줬던 낡은 물동이를 버렸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직도 날지 못하는 닭은 아닙니까? 가까이 보이는 강 저편을 건너지 못하여 이쪽에서만 머물고 있지는 않습니까? 재산과 욕망은 믿음의 강물을 가로막는 무덤입니다. 위선과 환상, 외형적 믿음은 우리의 내면을 가로막고 있는 장막입니다. 장막이 드리워진 눈으로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이 진실을 가리는 장막을 찢어내는 칼날이 되게 하여주소서. 주님의 말씀이 세상의 안위와 위선적 믿음의 장막을 찢어주시는 칼날이 되어 주님을 볼 수 있게 도와 주소서.

주님의 말씀이 저를 가두고 있는 무덤을 무너뜨리고 믿음의 강물이 흘러 내리도록 하여주소서.

저의 모든 장막을 거둬주시어 진정한 행복을 위한 사랑이 피어나게 하여 주소서.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나를 가두고 있는 무덤을 무너뜨리기 위해 묵상합시다.

2. 영적인 삶을 얻을 수 있는 참회의 은총을 받았습니까?

3. 세상을 쫓는 일에 지친 영혼이 진정으로 갈망하고 있는 것은 무엇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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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nordic | 작성시간 20.03.15 아멘, 감사합니다 ❤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0.03.1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구천번째 회원 | 작성시간 20.03.15 아멘... 깊이 묵상 하겠습니다. 아멘!
  • 작성자비비안나. | 작성시간 20.03.2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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