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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엣대주교님묵상

영혼이 깃든 진실된 의식(연중 제22주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21.08.29|조회수158 목록 댓글 6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영혼이 깃든 진실된 의식(연중 제22주일)


복음 마르 7,1-8.14-15.21-23

그때에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2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4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5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1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두 수도승이 산에서 내려오다가 깊고 큰 웅덩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녀를 만났습니다. 한 수도승이 소녀를 벌떡 안고 웅덩이를 건너주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다른 수도승이 그를 비난하며 말했습니다. “스님은 어찌하여 소녀를 안았습니까?” 그러자 다른 수도승이 답했습니다. “나는 그녀를 안아 웅덩이를 건너주고만 왔는데, 스님은 어찌하여 그 소녀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습니까?”

형식과 계율만 따르는 믿음, 마음에 따른 실천을 중시하는 믿음 중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계율만 따른 수도승은 감히 소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지만 그의 영혼은 이미 그 소녀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계율을 지켰다고 위안하며 수행을 어긴 다른 승려를 비난했습니다. 남에게 보여지는 외형적인 계율만을 지키다 보니 자신의 내면은 보질 못한 것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 역시 외형적인 믿음만을 존중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곧 계율이고 계율을 지키는 것이 곧 믿음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러한 잣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나환자와 출산한 여성, 이교도들을 더럽다고 생각했고 더러운 것과 접촉한 사람 역시 더러워진다고 믿었습니다. 더럽다는 것은 곧 죄를 지는 것이기에 더러워지지 않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손을 씻고 그릇도 열심히 닦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선입니다. 겉만 닦을 뿐 내면의 더러움을 닦지 않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손만 닦았지 양심은 닦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더러워지는 것이 두려워 환자와 접촉을 꺼리면서도 자신들의 마음 속의 사악함은 여전히 감춰두고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율법에 기록된 그 많은 계율을 지키기에 급급하여 자신의 믿음이 사랑과 영혼이 없는 믿음이 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의례적으로 성경을 읽고 외우고 기도하였습니다. 몸 속의 나쁜 것을 버리기 위해 금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계율이기에 금식을 했습니다. 소외된 사람들과 나눔의 사랑을 실천하기보다 가진 것을 과시하기 위해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진실된 마음이 없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외형적인 의식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의례가 가치를 지니려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실된 행동이어야 합니다. 진실된 마음으로부터 시작된 행동만이 가치가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의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사랑이고 그 사랑은 마음 깊은 곳에서 시작된 진실된 사랑이어야 합니다. 사랑없이 형식만을 따르는 것은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아무리 거룩한 일을 한다 해도 사랑이 없다면 바오로 성인의 말씀처럼 모든 것이 무의미한 일입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1코린 13,1-3)

그러므로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충실히 따르는 태도와 진실된 영혼으로부터 나오는 말입니다.

자선은 형제애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금식은 내 몸 속의 나쁜 것을 버리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세례는 참회의 마음이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이루어질때 성경을 읽는 나의 입술과 마음이 진실되이 주님께 다가갈 수 있습니다.

금식을 통해 영혼에 쌓인 죄가 씻겨지고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박애를 통해 허영이 사라질 것입니다. 손을 닦음으로써 나의 영혼도 같이 정결해 질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에서 시작된 행동이야말로 영혼이 깃든 진실된 의식으로 주님께 드리는 사랑의 미사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과 믿음이 있을 때만이 주님께 다가갈 수 있습니다.

주님, 저희가 더욱 더 가까이 주님께 다가갈 수 있도록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게 하여주소서.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남에게 보여지는 놀라운 일을 하는 것과 주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 중 무엇이 더 가치있는 일입니까?

2. 신자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미사에 참석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만나기 위해 미사에 참석하고 있습니까?

3. 코로나로 점점 어려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암울한 세상에 점점 소외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이웃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말을 전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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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요셉-막내165 | 작성시간 21.08.2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peater | 작성시간 21.08.2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별향기 | 작성시간 21.08.29 아멘 감사합니다 💕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1.08.2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pine1215 | 작성시간 21.08.29 +아멘
    감사합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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