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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엣대주교님묵상

이기적인 아들과 메마른 영혼의 아들(사순 제4주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22.03.26|조회수194 목록 댓글 4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이기적인 아들과 메마른 영혼의 아들(사순 제4주일)


복음 루카 15,1-3.11ㄴ-32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1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12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14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15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17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18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25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27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29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31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32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오늘 복음은 인자하신 아버지의 고귀한 사랑을 일깨워주고자 하신 비유로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기적인 아들

아들은 부모님께 재산을 요구했습니다. 더구나 살아계신 부모님께 재산을 나눠달라는 엄청난 불효를 저지른 아들은 눈물과 땀이 어린 그 돈을 갖고 떠나 방탕한 생활을 하며 모두 탕진해버렸습니다. 돈이 떨어지자 주변사람들은 모두 외면했고 비참한 생활을 견딜 수 없게 되자 그제서야 안락한 집과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참으로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사랑을 품은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는 자식의 행복을 위해 자산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들이 떠난 후 아버지는 매일 밤 아들을 그리워하며 어두운 골목에 나가 기다렸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들이 당신의 돈만 바랄 때 아버지는 자신의 돈보다도 아들의 행복만을 바라고, 아버지가 기다림에 지쳐가는 동안 아들은 오직 쾌락만을 즐겼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생각지도 않는 데 부모는 왜 이토록 자식만을 생각하고 그리워할까요?

이 복음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벅찬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구절은 아버지와 아들의 짧은 만남의 순간입니다.

“아들이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아버지는 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들은 미처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아버지는 한눈에 아들을 알아봤습니다. 연로한 아버지보다 더 밝은 눈을 가진 아들이 알아보기도 전에, 아들을 그리워했던 아버지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멀리오는 아들을 한 눈에 알아봤습니다. 자식을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담고 있는 눈은 소중한 사람의 그림자조차도 알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젊고 밝은 눈이지만 사랑이 결여된 눈은 마치 장님과도 같이 타인의 마음 속에 있는 사랑을 볼 수 없습니다.

달려가서 아들의 목을 껴안은 아버지

인자한 사랑의 아버지는 아들의 지난 잘못을 잊은 지 벌써 오래 전입니다. 방탕했던 아들이 아니라 눈 앞에 있는 남루하고 야윈 아들만 보일뿐이기에 아들을 만난 기쁨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아들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진 못한 아버지는 달려가 덥석 껴 안았습니다. 넘치는 기쁨과 사랑이 아버지를 마치 어린아이처럼 달려가게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보다 작은 아들은 비록 젊지만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사랑이 없는 마음은 병든 몸과 같습니다. 연로한 아버지는 체력이 아니라 사랑의 힘과 사랑의 날개로 한숨에 달려갔습니다.

어떤 표현으로도 잃었던 아들을 만난 아버지의 기쁨을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은 입맞춤으로도 부족하였기에 아들이 다시는 더 이상 멀리 가지 못하도록 꼭 껴 안았습니다. 아들이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보고, 넘치는 사랑을 느끼고, 달려가서, 포옹하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방탕한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너무 많은 것을 허비했습니다. 너무 쉽게 재산을 주었고 돌아온 탕자를 위해 좋은 옷과 신발을 주고, 반지를 끼워주고 잔치를 열어주는 등 많은 것을 소비했습니다. 자신을 비웃는 사람들의 이목은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과분한 사랑을 준 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사랑은 이론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황폐한 영혼을 지닌 큰 아들

형은 동생이 떠난 후에도 계속 아버지를 모시며, 아버지의 뜻을 따르며 아버지 곁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있었던 것은 육체일 뿐이었습니다. 동생이 재산을 갖고 떠난 후부터 그의 영혼은 황폐해졌습니다. 몸은 비록 가족과 함께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떠났고,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마치 하인처럼 돈을 받기 위해 일했습니다. 비록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멀어진 마음은 슬픔과 사랑을 지닌 아버지 마음을 볼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큰 아들에게도 똑 같은 사랑을 주었지만 아들은 그저 동생에게 재산을 나눠 준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여전히 포용하고 사랑하고 있었으나 아들의 편협한 마음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넓고 열린 영혼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마음을 꼭 걸어잠가 황폐한 영혼이 되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불만과 비판만을 할 때, 아버지는 단지 용서만을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큰아들을 찾아나선 아버지

아버지는 다시 한번 마음이 아픈 큰 아들을 찾아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아들을 만난 아버지는 전과 다름없는 인자하고 온화한 말, 따뜻한 눈길로 아들을 보듬으며 집에 돌아오도록 설득하였습니다. 돈을 탕진한 작은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물질적인 안락함을 주는 집이었다면, 큰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아버지와 동생을 이해하고 다시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상처와 치유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기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다면 어떠한 상처도 치유될 것입니다. 단, 인자한 아버지와 함께하는 치유만이 영원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자신이 두 아들 중 어떤 쪽에 속하더라도 ‘모든 사람은 반드시 아버지께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나의 삶이 황폐하지 않을지라도 나의 영혼은, 수 없이 여러 번 아버지를 곁을 떠나 방황하였을 것입니다. 때로는 아픔과 고통을 주시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때로는 나의 성공이 내가 노력한 결과라는 착각으로, 나의 행동과 생각이 아버지이신 주님의 뜻과 점점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자녀입니다. 언제라도 편안히 아버지 곁으로 돌아 갈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인자한 아버지는 벌써 골목 밖까지 나와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내가 그분을 사랑하기 이전부터 나를 사랑하신 분이시고, 내가 그분을 찾기 전부터 이미 나를 찾으시고, 내가 그분에게 용서를 구하기 전에 이미 나를 용서해 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인자한 아버지이신 주님,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에 감사 드립니다.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나는 이기적인 아들입니까. 황폐한 영혼을 가진 아들입니까?

2. 어두운 골목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 인자한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까?

3. 아버지이신 주님께 돌아가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의 실천

1. 기쁨의 주님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 아버지께 한발 더 다가가기 위한 작은 회개를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2. 내가 지금 이렇게 여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언제나 사랑을 주는 가족과 친구, 이웃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의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의 사랑도 표현해 보기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희망의 기적’의 저자이신 구엔 반 투안 추기경님이 자택 감금 생활을 했던 방과 당시 사용했던 집기류. 지금은 추기경님의 당시 생활을 볼 수 있는 전시를 하고 있다. 2017년 가경자로 선포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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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요셉-막내165 | 작성시간 22.03.2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pine1215 | 작성시간 22.03.2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03.27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돈보스코 | 작성시간 22.04.0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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