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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엣대주교님묵상

현시대의 '거룩하고 잔인한 돌'(사순 제5주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22.04.03|조회수139 목록 댓글 4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현 시대의 ‘거칠고 잔인한 돌’ (사순 제 5 주일)


복음 요한 8,1-11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3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4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오늘 복음의 ‘돌’은 베트남에서는 ‘벽돌’로 번역되어있습니다. 나라마다 번역은 다르겠지만 그 의미는 같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향한 비판에 ‘돌을 던지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A씨, B씨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는 내가 바로 그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논리, 행동방식을 표준으로 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나의 논리와 방식을 따를 것을 강요합니다. 근거없는 주관적인 판단,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수용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돌을 맞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SNS라는 문명 뒤에 숨어 한치의 망설임없이 자신의 편협되고 주관적인 잣대로 상대를 판단하고, 비난하고, 수없이 많은 돌을 던지고 있습니다. 당사자의 해명을 들을 필요도 없고, 그들의 고통은 보이지도 않고, 볼 필요도 없으며 나와 무관합니다. 그들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을 했다고 자신하기 때문입니다. 포용과 배려는 없습니다. 그들이 수 없이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쌓아 놓은 명예를 손상시키고 회복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줍니다. SNS에 거침없이 쏟아내는 비난은 현대 사회의 ‘거칠고 잔인한 돌’입니다. 실제 벽돌로 때리는 것보다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의 세상에 그래도 주님께서는 인간의 어두운 과거를 잊고, 밝은 미래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시고 거센 물 속에 큰길을 내신 분’ 주님의 사랑은 바다가 되어 인간의 모든 죄를 씻어주실 것입니다. 회개를 하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는 따뜻한 포용으로 우리를 맞아주실 것입니다.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끊임없는 마라톤과 같습니다. 목적지를 향해 순간의 사사로운 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온몸을 던져 달려가는 기나 긴 마라톤, 그 목적지 끝에는 우리를 기다리는 사랑의 주님이 계십니다. 회개의 마음으로 주님께 돌아간다면 우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관대하게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사람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시며,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것을 보십니다. ‘자비의 하느님’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단지 ‘진실된 회개와 실천’이 필요할 뿐입니다.

오늘 복음은 나도 과연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 지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내가 무심코 던진 돌들이 상대방의 마음에 잔인한 상처를 주고 있는 지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나의 잘못된 지난 날을 회개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주님의 믿음과 사랑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주님의 용서를 통하여 무한한 자비의 은통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인자하신 주님, 주님의 무한한 사랑에 감사 드립니다.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심판과 용서 중 무엇을 더 많이 하고 있습니까?

2. 다른 사람을 심판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심판하고 있습니까?

3. 다른 사람에게 용서를 베풀 때 그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진심으로 용서하고 있습니까?

말씀의 실천

1. SNS에 즉각적인 반응보다는 객관적인 시각과 침묵으로 지켜보는 한 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노이 교구 So Kien 순교성지의 ‘안드레아 중락 (Andrew Dung-Lac)’ 성인상 주변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청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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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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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돈보스코 | 작성시간 22.04.03 아멘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04.03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히브리어 | 작성시간 22.04.03 +아멘
    오늘도고맙습니다

  • 작성자김광시 | 작성시간 22.04.03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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