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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엣대주교님묵상

주님 사랑의 눈빛(주님 수난 성지 주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22.04.09|조회수173 목록 댓글 5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주님 사랑의 눈빛(주님 수난 성지 주일)


복음 루카 19,28-40

그때에 28 예수님께서는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29 올리브 산이라고 불리는 곳 근처 벳파게와 베타니아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 둘을 보내며 30 말씀하셨다. “맞은쪽 동네로 가거라. 그곳에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을 풀어 끌고 오너라. 31 누가 너희에게 ‘왜 푸는 거요?’ 하고 묻거든, 이렇게 대답하여라. ‘주님께서 필요하시답니다.’”

32 분부를 받은 이들이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33 그래서 그들이 어린 나귀를 푸는데 그 주인이, “왜 그 어린 나귀를 푸는 거요?” 하고 물었다.

34 그들은 “주님께서 필요하시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5 그리고 그 어린 나귀를 예수님께 끌고 와 그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걸치고, 예수님을 거기에 올라타시게 하였다. 36 예수님께서 나아가실 때에 그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깔았다.

37 예수님께서 어느덧 올리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이르시자, 제자들의 무리가 다 자기들이 본 모든 기적 때문에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하기 시작하였다. 38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

39 군중 속에 있던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자들을 꾸짖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0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사업, 파스카의 신비를 완성하시고자 들어서는 길에 열렬히 환영하는 군중들과 당신을 죽이려는 음모, 그 모든 걸 알고도 그 길을 한발 한발 내딛는 그 마음까지도 동참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의 성공과 실패

삼십년 동안 나자렛에서 겸손한 삶을 살아오신 에수님께서는 마지막 3년, 유다 전 지역에서 설교를 하시면서 성공과 실패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유다인의 가장 중요한 날인 유월절을 맞이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셨습니다. 12살 때부터 매년 유월절에 이곳에 오셨기에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이곳에 오신다는 것도, 위험에 처할수도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실패를 겪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20세기 초 베트남의 유명한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공하지 못했어도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실패와 성공 중 성공만이 성공한 사람의 기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대하는 태도나 행동입니다. 하느님의 권능을 가지신 분이기에 모든 것을 성공으로 만드실 수 있음에도 인간의 삶에 수 없이 경험하게 되는 실패와 성공, 인간의 삶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죽음까지도 받아들이셨습니다.

‘코끼리에게 밟혀 죽는 것을 피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조금 더 ‘현명하실 수 없으셨을까요?’ 그 분께서는 여전히 해야 할 일을 하셨고, 숨기지 않으셨으며, 어떤 어려운 상황도, 어떠한 임무도 받아들이셨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잡으러 왔을 때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청할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 청하기만 하면 당장에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내 곁에 세워 주실 것이다.” 이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 왜 그런 고난과 수모의 길을 가신것일까요?

당신의 권위로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지 않으셨고, 도전을 받아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모든 경우가 당신에게 참혹한 고난일지라고 당신 스스로 '인간과 똑 같은 조건'을 마지막 순간까지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연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간으로서, 인간이기에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상황에 따라 인간은 변합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열렬히 환영하던 군중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 예수님께 분노와 적개심을 드러내며 예수님을 심판하라고 소리지르며 조롱하고 있습니다. 스승과 빵을 나누고 잔을 들었던 유다는 스승을 팔기 위해 서둘러 빠져나갔고, 스승 옆에서 삶과 죽음을 이야기 했던 베드로는 이제 스승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포악한 군중들 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넘치는 사랑과 자비, 평온을 유지하시고 계셨습니다.

십자가위의 고통과 치욕의 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제자인 베드로를 걱정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스승을 부인한 후에야 비로소 스승의 어두운 표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애로운 모습 속에 가슴 에이는 슬픔을 담고 계신 스승의 모습에서 배신한 제자를 비난하는 눈빛이 아니라 나약한 제자를 용서하는 넓은 사랑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자비의 용서는 베드로를 깊은 참회의 슬픔에 잠기게 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마치 더러운 진흙 속에서도 정결하고 순수한 봉우리를 피워내는 연꽃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성찬례를 통해 당신 자신을 모든 사람에게 바치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사랑을 나누는 기적, 사랑의 행위는 사람들이 자신을 극복하고, 모든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을 위해 기꺼이 죽는 것입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악은 사랑 앞에서 무력합니다. 우리가 실천하는 봉사, 그것도 숭고한 나눔의 사랑입니다.

분노와 배반을 초월하는 고귀한 사랑 이것이 바로 주님 크신 사랑이고 주님 사랑의 승리입니다.

겸손하시고 인자하신 주님, 편협한 저희 마음을 고쳐주시어 넓고 자비로운 주님의 마음을 닮게 하소서.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패션과 트랜드를 쫓기에 바쁜 세상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내 의지와 무관하게 그러한 세상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나는 어디쯤 서 있는 지 생각해봅시다. 2. 그리스도교는 박애와 자비로 믿음을 표현하고 실천합니다. 배신을 당하고 불공평함으로 인해 손해를 보았을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돌이켜보십시오.

말씀의 실천

1.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을 위해 나의 생명을 바칠 수는 없습니다.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숭고한 사랑은 정의를 실천하고 나누는 사랑입니다. 나의 가족, 나의 이웃에게 사랑의 눈길, 사랑의 마음, 나눔의 사랑을 전해보시기 바랍니다.








과거 하노이 대교구 주교좌 성당이었던 So Kien 성당 성수대와 So Kien 순교자 유골 봉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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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김광시 | 작성시간 22.04.09 아멘 💖💖💖
  • 작성자pine1215 | 작성시간 22.04.0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2.04.10 아멘~감사합니다
  • 작성자요셉-막내165 | 작성시간 22.04.1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04.10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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