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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2년 9월 2일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2.09.02|조회수311 목록 댓글 11

▥ 제1독서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 4,1-5>


형제 여러분,

1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2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3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4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5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5,33-39>


그때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33 예수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35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37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 없지 않으냐?”

(루카 5,34)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신랑’이라고 부르십니다.

이는 ‘새로운 때’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신랑이 와 있는 때’임을 선포하십니다.

그래서 단식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단식할 때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새 시대’가 온 까닭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낡은 옷에다가 깁을 수 없는 새 천이며, 낡은 가죽 부대에 담을 수 없는 새 포도주에 비유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루카 5,38)

 

‘새 부대’란 ‘변화된 삶’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새 포도주를 담을 변화된 삶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착한 강마을 사람들 이야기'(로날드 롤하이저)를 들려드립니다.

 

큰 강을 끼고 있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강에서 세 사람이 떠내려 왔는데, 한 사람은 이미 죽었고, 한 사람은 심하게 부상을 입고 있었고, 또 한 사람은 어린 아이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강에서 건져내어 죽은 사람은 정성껏 매장해 주고, 부상당한 사람은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어린 아이는 돌볼 가정에 의탁했습니다.

 

이 마을에 이런 사건들이 수 년 동안 지속되자 사람들은 떠내려 오는 사람들을 잘 건져낼 방법을 고안하고, 그들을 잘 돌볼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런 자선행위에 자부심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무도 강 상류에 올라가 거기에 무슨 일이 있는지, 왜 사람들이 이렇게 죽거나 다쳐서 떠내려 오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의 착한 마을 사람들처럼 되기를 바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런 이해대로라면,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불의한 사회적 환경에 대하여 교회가 갈등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저 사회의 낙오자가 되어 떠내려오는 이들만 도우면 될 테니까요.

만약 교회가 이러한 모습으로 세상에 존재하면 아마도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환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결코 그러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의 사명은 ‘복음의 빛’으로 세상을 식별하며, 이 땅에 정의와 평화, 사랑과 공동선, 인간과 생명이 존중되는 ‘하느님 나라의 건설’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는 미워할 수 없지만, 나는 미워하고 있다.

세상이 하는 짓이 악해서 내가 그것을 들추어내기 때문이다.”

(요한 7,7)

 

브라질의 헬더 카마라 대주교는 이런 체험을 전해줍니다.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그들은 나를 성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내가 왜 가난한 이들이 굶주리는가를 물으면 그들은 나를 빨갱이라고 부른다.”

 

카마라 대주교의 이 말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왜 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다치고 아픈지, 왜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가난한 이들이 많아지는지, 왜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착취되는지, 그 원인을 묻고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하면 ‘빨갱이,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우리의 현실과 별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복음의 기쁨>에서 말씀하십니다.

“진리와 사랑 앞에서 몸을 숨기는 것은 자살행위다.”(272항)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루카 5,38)

 

주님!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가 되게 하소서!

제 마음이 새 부대가 되어 당신 사랑에 젖고 당신 향기 품게 하소서.

제 삶이 포도주 잔이 되어 당신의 사랑을 건네주게 하소서

이 나라 이 땅이 신랑을 맞이한 혼인잔치가 되게 하소서!

오순도순 모여 사랑 가득 채운 술잔을 쳐들게 하소서!

사랑과 웃음소리 지저귀는 새소리로 번지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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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마리아로사 | 작성시간 22.09.02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2.09.02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이기창 | 작성시간 22.09.02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09.02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예은 루치아 | 작성시간 22.09.03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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