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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2년 9월 4일 연중 제23주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2.09.04|조회수311 목록 댓글 8

▥ 제1독서

<지혜서의 말씀 9,13-18>


13 어떠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14 죽어야 할 인간의 생각은 보잘것없고, 저희의 속마음은 변덕스럽습니다.
15 썩어 없어질 육신이 영혼을 무겁게 하고 흙으로 된 이 천막이 시름겨운 정신을 짓누릅니다.
16 저희는 세상 것도 거의 짐작하지 못하고 손에 닿는 것조차 거의 찾아내지 못하는데 하늘의 것을 밝혀낸 자 어디 있겠습니까?
17 당신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18 그러나 그렇게 해 주셨기에 세상 사람들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사람들이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 제2독서

<사도 바오로의 필레몬서 말씀 9ㄴ-10.12-17>

 

사랑하는 그대여,

9 나 바오로는 늙은이인 데다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수인까지 된 몸입니다.
10 이러한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12 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13 그를 내 곁에 두어, 복음 때문에 내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대 대신에 나를 시중들게 할 생각도 있었지만,
14 그대의 승낙 없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선행이 강요가 아니라 자의로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15 그가 잠시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를 영원히 돌려받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6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형제라면, 그대에게는 인간적으로 보나 주님 안에서 보나 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17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들여 주십시오.

 

 

✠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4,25-33>


그때에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순교자 성월의 첫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의 주제는 지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의 기도의 마지막 부분을 들려줍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지혜로 “세상 사람들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사람들이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지혜 9,18)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2독서의 필레몬서에서는 노예였던 오네시모스를 종으로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바오로 사도의 신자로서의 삶의 지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하느님의 지혜가 오늘 복음에서는 구체적으로 십자가의 지혜로 드러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중, 그 길을 함께 가는 이들에게 당신의 제자가 되는 지혜를 세 가지 조건으로 제시하십니다.

 

첫째는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는 것이요, 둘째는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7)는 것이요, 셋째는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33)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조건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은 3개의 동사입니다.

동사는 행동하는 것을 표현해줍니다.

따라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3 가지의 행동실천이 따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동사는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 할 때의 ‘미워하다’는 동사입니다.

너무도 매정하게 들리는 ‘미워하다’는 이 동사의 뜻은 제대로 알아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히브리어의 방언인 아람어에는 비교급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성경에서 ‘누구는 미워하고 누구는 사랑한다.’는 표현이 나오는 경우에, ‘미워하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미워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고, ‘누구보다 뒤에 사랑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사랑하다’는 말은 ‘앞세워 사랑하다 혹은 선호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로마서 9장 13절의 “‘나는 야곱을 사랑하고 에사오를 미워했다’라고 기록된 성경말씀대로이다.”라는 표현이 그렇고, 루카복음 16장 13절의 “어느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라는 표현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는 결코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무시하라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신 분께서 부모 자식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금지하거나 적대시 하실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것과 가족들과의 사랑의 관계에서 어느 것을 더 우위에 두고 앞세워 흠숭할 것인가의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동사는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 할 때의 ‘지다’라는 동사입니다.

여기서 ‘지다’라는 동사는 억지로 마지못해 어깨에 지는 짐처럼 압박감에 눌려있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무거운 짊진 자 다 나에게로 오라’고 하신 분께서 짊을 덜어주시기는 커녕 더 무겁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다’라는 말의 원래의 뜻은 ‘어머니가 아기를 가슴에 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끌어안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십자가는 어머니가 아기를 품듯, 소중하게 자의로 스스로 품는 것을 말한다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그분을 따르기 위한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두 개의 비유를 들어 설명해주십니다.

곧 탑을 세우는 건축가가 소요 경비를 미리 계산하는 것과 같으며, 또 자기보다 더 강한 임금과 전쟁을 할 것인지 평화협정을 맺을 것인지 미리 따져보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곧 자신의 처지와 실상을 알고 자의로 소중히 책임을 지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셋째 동사는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 할 때의 ‘버리다’라는 동사입니다.

‘버리다’의 의미는 단지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 비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버리고 욕심을 비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어의 뜻은 ‘거부하다’, ‘거절하다’, ‘부인하다’ 입니다.

곧 자신의 뜻을 부인하는 것이요, 자신에게 신뢰를 두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신 하느님께 신뢰를 두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요, 하느님의 권능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곧 사랑으로 ‘바친다.’, ‘가납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쓸 데 없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무익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을 본래의 주님께 봉헌하는 것이요, 돌려드리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소유자가 아니라, 속해 있는 자임을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자임을 깨달을 때라야 바쳐지고 비워지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힘이며 하느님의 지혜”(1코린 1,24)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지혜가 인간들의 지혜와는 사뭇 다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1코린 3,18-19)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하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카 14,27)

 

주님!

당신의 제자가 되게 하소서!

제가 당신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 자신을 따르기보다 당신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제 자신이 바라는 것보다 당신이 바라는 것과 당신을 바라게 하시고,

제가 믿는 것보다 저에 대한 당신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게 하소서.

더 이상은 당신의 사랑을 배신하지 않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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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마리아로사 | 작성시간 22.09.04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경현맘 | 작성시간 22.09.04 아멘 고맙습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09.04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2.09.04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예은 루치아 | 작성시간 22.09.04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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