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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2년 9월 13일 화요일 ·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2.09.13|조회수250 목록 댓글 8

▥ 제1독서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 12,12-14.27-31ㄱ>


형제 여러분,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14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28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입니다.
그다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다음은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29 모두 사도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예언자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교사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기적을 일으킬 수야 없지 않습니까?
30 모두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질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를 해석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31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7,11-17>


그 무렵

11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
제자들과 많은 군중도 그분과 함께 갔다.
12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13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14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15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16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7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젊은이야, 일어나라.”>

 

오늘 복음인 ‘나인의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신 이야기’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이야기’(루카 8,40-56)와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이야기’(요한 11,17-44)와 함께 예수님의 신적 권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물론 죽은 이를 살리신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도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엘리야가 사렙다의 과부의 아들을 살린 이야기(1열왕 17,17-24)라든지,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린 이야기(2열왕 4,32-37), 베드로가 도르가를 살린 이야기(사도 9,36-43)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 이야기와 예수님의 이야기가 어떻게 다른가?

그것은 다른 이야기들은 그들이 하느님께 간청해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직접 “일어나라.”는 한 마디의 말씀으로 죽은 이를 손수 살리십니다.

곧 당신의 신적 권능으로 살리시면서,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마주치게 되는 일 중에 가장 슬픈 일 중의 하나는 아마도 소중한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세상에서 떠나보내는 일일 것입니다.

불의의 사고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슬픈 일은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간 자식을 잃었을 때일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죽으면 땅에 묻지만,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과부는 오로지 외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가 이제 그 외아들마저 잃었으니 그 슬픔이 오죽하였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울지 마라.”하시며 관에 손을 대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젊은이야, 일어나라.”

(루카 7,14)

 

예수님께서는 어제 복음에서처럼 말씀의 권능을 드러내십니다.

단 한마디 ‘말씀’으로 목숨을 살리십니다.

 

그것은 라자로를 살리실 때처럼 기도를 드리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처럼 간청을 받았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당신께서는 순전히 당신의 진정한 마음, 곧 ‘가엾은 마음’으로 신적인 권능을 드러내십니다.

곧 드러난 것은 신적인 권능이지만, 그 권능을 불러온 것은 예수님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상한, 아픈 마음 곧 상심이 불러온 사랑입니다.

외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단장의 아픔’을 그대로 받으신 예수님의 ‘심장이 찢기어지면서’ 흘러나온 사랑입니다.

외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아픈 가슴에 가 닿은, 그 아픔과 분리되지 않은 상한 마음입니다.

바로 이 사랑이 죽음을 이기는 권능을 불러왔습니다.

 

이는 사랑이야말로 모든 것을 이루는 힘임을 말해줍니다.

결국 사랑이 목숨을 살리는 힘이요, 구원의 힘임을 말해줍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로마 13,10)

 

그렇습니다.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힘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는 힘이듯이, 우리의 사랑 역시 이웃과 자신을 구원으로 이끌어줍니다.

 

하오니, 주님!

저에게 아파하는 마음을 주소서!

제 마음이 당신 마음 같게 하시고, 제 마음이 상하고 찢기어지게 하소서!

 

<오늘의 말 · 샘 기도>

 

“젊은이야, 일어나라.”

(루카 7,14)

 

주님!

관에 손을 대시고 죽은 이를 일으켜 세우시듯, 당신과는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열차에 누워 잠들어 있는 저를 일으켜 세우소서!

죽음의 길 벗어나 생명의 길 걷게 하소서!

쪼개어 나누며 먼저 사랑하게 하소서!

상처도 축복이 되게 하시고 아픔도 기쁨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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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2.09.13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감사하는 | 작성시간 22.09.13 아멘
  • 작성자예은 루치아 | 작성시간 22.09.13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아낄래요 | 작성시간 22.09.13 감사합니다.~
    오늘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09.13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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