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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2년 9월 21일 수요일 ·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2.09.21|조회수372 목록 댓글 9

▥ 제1독서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 4,1-7.11-13>

 

형제 여러분,
1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 복음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9,9-13>


그때에

9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께서 마태오를 부르신 다음, 그의 집에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식사하십니다.

그러나 이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합니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마태 9,11)

 

이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이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마태 9,12)

 

이 말씀은 예언자 호세아가 선포한 말씀을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것입니다.

예언자 호세아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부부 혹은 연인의 관계로 설정하고, 스스로 부정한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여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부정한 여인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주는 남편의 모습을 통해서, 부패와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당신 품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를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회개로 초대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진정한 회개의 길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신의이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이다.”

(호세 6,6)

 

이는 ‘진정한 회개’의 길은 애꿎은 짐승을 잡아 바치는 외적인 제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신의와 형제들에 대한 자비를 지키는 일이며, 이를 ‘하느님의 마음을 아는 예지’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회개'란 곧 ‘하느님의 신의와 자비를 배우는 일’이요, ‘하느님의 마음을 아는 일’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죄인 세리 마태오를 부르시고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은 그들과 타협하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두둔하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크신 자비요, 신의요, 호의였습니다.

용서와 사랑의 하느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바로 이 사랑, 이 호의를 입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입니다.

그토록 사랑과 호의를 입은 이들이기에, 또한 그렇게 사랑과 호의를 베푸는 일을 소명으로 받은 이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용서를 입은 죄인들입니다.

‘용서받은 죄인’이란 다름 아닌 용서하는 일을 소명으로 받은 이들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 9,12)

 

<팡세>를 쓴 파스칼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자기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의인이며, 하나는 자기를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죄인이다.”

 

오늘 만약 우리가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여긴다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들의 친구인 그분을 친구로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진정 죄인이라면, 먼저 죄의 용서를 청해야 할 일입니다.

일곱 번 용서하기에 앞서, 일흔 번 용서를 청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용서해야 하는 사람이기에 앞서, 먼저 용서를 청해야 하는 사람,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인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이다.”

(마태 9,12)

 

주님!

제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바라시는 바를 알게 하시고, 당신이 바라시는 것을 바치게 하소서.

희생제물이 아니라 제 행실을 바치게 하소서.

제 자신이 자비의 산제물이 되게 하소서.

당신께 바치되 제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위하여 내어놓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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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2.09.21 아멘~감사합니다
  • 작성자안나쌤 | 작성시간 22.09.21 아멘!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2.09.21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09.21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예은 루치아 | 작성시간 22.09.22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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