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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2년 9월 25일 연중 제26주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2.09.25|조회수275 목록 댓글 5

▥ 제1독서

<아모스 예언서의 말씀 6,1ㄱㄴ.4-7>


전능하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불행하여라, 시온에서 걱정 없이 사는 자들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 놓고 사는 자들!
4 그들은 상아 침상 위에 자리 잡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양 떼에서 고른 어린양을 잡아먹고 우리에서 가려낸 송아지를 잡아먹는다.
5 수금 소리에 따라 되잖은 노래를 불러 대고 다윗이나 된 듯이 악기들을 만들어 낸다.
6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고 최고급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7 그러므로 이제 그들이 맨 먼저 사로잡혀 끌려가리니 비스듬히 누운 자들의 흥청거림도 끝장나고 말리라.”

 

 

▥ 제2독서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1서 말씀 6,11ㄱㄷ-16>


11 하느님의 사람이여,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
12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
그대는 많은 증인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였을 때에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13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그리고 본시오 빌라도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신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대에게 지시합니다.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
15 제때에 그 일을 이루실 분은 복되시며 한 분뿐이신 통치자 임금들의 임금이시며 주님들의 주님이신 분
16 홀로 불사불멸하시며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 분 어떠한 인간도 뵌 일이 없고 뵐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께 영예와 영원한 권능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6,19-31>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오늘은 연중 26 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 이번 주일 말씀전례의 주제도 재물의 사용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제1독서에서 아모스 예언자는 가진 자들의 흥청거림과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곧 ‘시온에서 걱정 없이 사는 자들’,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 놓고 사는 자들’, ‘요한 집안이 망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믿음을 위한 싸움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라고 권고합니다.

곧 티모테오에게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의로움과 ~ 사랑'을 추구하며, '그리스도가 나타날 떼까지 흠 없이 계명을 지키기'를 권고합니다.

 

오늘 복음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로, 극단적인 두 인물의 대조된 모습을 통해 재물의 올가미에 사로잡힌 우리를 하느님의 말씀에로 초대합니다.

 

이 비유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루카 16,20)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자의 이름은 제시하지 않으나, 거지는 ‘하느님이 도와주시는 이’라는 뜻의 ‘라자로’라고 그 이름을 밝힘으로써 하느님이 그를 인정하고 도우신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반면에 부자가 가련한 라자로를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라자로 사이에 골짜기를 파놓고 분리된 삶을 살았음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가 이승에서 파놓고 건너가지 않은 그 분리의 골짜기는 저승에서도 그가 건너갈 수 없는 분리의 골짜기가 되고 맙니다.

그러니 우리가 가난한 이들과 형제들과 사이에 높은 문턱을 쌓아놓고 살게 되면, 저승에다 건널 수 없는 구렁을 파놓는 꼴이 될 것입니다.

 

사실 이 부자는 특별한 악행을 저지른 것이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단지 소유한 자신의 재물을 자신의 호화로운 생활과 즐거움을 위해 사용하면서도 타인을 위해 쓰는 데는 인색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대문 앞에 누워있는 가난한 라자로를 무시하고 그에게 무관심했을 뿐입니다.

마치 제1독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가진 자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이 비유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서 할 바를 다한 것이 아니라, 선행과 자비를 베풀지 않음이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다시 말하면,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곧 죄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이는 부유함(부자)=멸망, 가난함(빈자)=구원이라는 등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심판받은 것은 그가 단순히 부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이웃사랑을 하지 않은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음식을 먹되 나누어 먹어야 하고, 마시되 자신의 혀만 적시는 것이 아니라 남의 혀도 적셔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재물을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되 소유당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나아가서, 자비를 입었으니 가난한 이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에서 부자가 죽어서 아브라함에게 한 말인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6,24)라는 간청은 ‘제가 자비를 베풀게 해주십시오.’ 라는 간청으로 바뀌어야 할 일입니다.

세계적인 거부 석유 왕 록펠러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돈을 벌기보다 쓰기가 열 배는 어렵다”

 

그러기에 우리는 마음의 눈을 뜨고 있어야 할 일입니다.

사실 대문 앞에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로 누워있어도 못본 척한 것처럼, 내 곁에 형제가 상처투성이로 누워있어도 못 보는 것은 우리 마음의 눈이 감겨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아니, 탐욕과 인색에 눈이 가려져버린 까닭일 것입니다.

자신의 호사스러움과 즐거움에 눈이 가려져버린 까닭일 것입니다.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무시한 까닭일 것입니다.

 

그러니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형제들 사이에, 또 가난한 이들과의 사이에, 냉대와 무시와 무관심의 골짜기를 파놓아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것은 곧 저승에서의 골짜기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저승에서 처지가 뒤바뀐 부자는 자기 형제들에게 라자로를 보내달라고 청하지만,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루카 16,29)

 

이승에서 자비를 베풀어야 저승에서 자비를 입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심판 후에는 그 기회가 마감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사실 부자는 이승에 살고 있는 자신의 형제들의 회개를 위해서 라자로를 보내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보다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승에서는 이미 하느님의 말씀이 있으니 그 말씀을 들어야 하며,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카 16,31)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일으키는 것은 기적적인 사건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일’에 있음을 밝혀주십니다.

사실 당신을 믿지 못함은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혹은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듣고도 받아들이지를 못한 까닭일 것입니다.

기적을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혹은 신비를 체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완고한 까닭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 복되다.”

(루카 11,28)

 

<오늘의 말 · 샘 기도>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루카 16,20)

 

주님!

마음의 눈을 열어 타인의 처지를 볼 줄 알게 하소서.

음식을 먹되 나누어 먹고, 자신의 혀만 아니라 남의 혀도 적셔주게 하소서.

재물을 소유하되 소유당하지 않게 하시고, 탐욕에 빠지지 않고 인색하지 않게 하소서.

악을 저지르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을 베풀게 하시고, 자비를 입었으니 자비를 베풀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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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돈보스코 | 작성시간 22.09.25 아멘
  • 작성자동읍신방 | 작성시간 22.09.25 아 멘 !
    감사합니다 ^^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09.2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예은 루치아 | 작성시간 22.09.26 아멘~
    감사합니다 ...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2.09.26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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