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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2년 10월 5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2.10.05|조회수384 목록 댓글 10

▥ 제1독서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 2,1-2.7-14>


형제 여러분,

1 십사 년 뒤에 나는 바르나바와 함께 티토도 데리고 예루살렘에 다시 올라갔습니다.
2 나는 계시를 받고 그리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민족들에게 선포하는 복음을 그곳 주요 인사들에게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전에 한 일이 허사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7 그들은 오히려 베드로가 할례 받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듯이, 내가 할례 받지 않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8 할례 받은 이들을 위하여 베드로에게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 주신 분께서, 나에게도 다른 민족들을 위한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9 그리고 교회의 기둥으로 여겨지는 야고보와 케파와 요한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을 인정하고, 친교의 표시로 나와 바르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이들에게 가기로 하였습니다.
10 다만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기로 하였고, 나는 바로 그 일을 열심히 해 왔습니다.
11 그런데 케파가 안티오키아에 왔을 때 나는 그를 정면으로 반대하였습니다.
그가 단죄받을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12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오기 전에는 다른 민족들과 함께 음식을 먹더니, 그들이 오자 할례 받은 자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몸을 사리며 다른 민족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13 나머지 유다인들도 그와 함께 위선을 저지르고, 바르나바까지도 그들과 함께 위선에 빠졌습니다.
14 그러나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에 따라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케파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다인이면서도 유다인으로 살지 않고 이민족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민족들에게는 유다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1,1-4>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기도’는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는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도를 '욕망의 해석자'라고 표현했습니다.

그의 기도를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십계명’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며,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주님의 기도’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가장 완전한 기도이다.

~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올바르게 바랄 수 있는 것을 모두 청할 뿐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청해야 할 것을 순서대로 청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기도는 청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정서까지도 형성시켜준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고, 욕망을 훈련시켜 하느님의 목적과 조화를 향하도록 변화한다.”

 

그렇습니다.

‘기도’를 보면, 그 사람이 보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이 기도에 담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기도 안에는 그 사람이 담겨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기도'에는 예수님이 담겨 있습니다.

곧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당신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담기기를 바라시는 것들이 무엇인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이 기도문에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자 하셨던 것들이 수정처럼 농축되어 있습니다.

이 기도문은 비록 짧지만, 그리스도교 신학과 신앙의 근본과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참으로 복음 전체를 요약한 것이다.”

사실 이 기도는 ‘주님께서 직접 가르쳐준 기도’로서, ‘예수님의 기도’라는 사실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기도를 드릴 때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께 기도드리게 됩니다.

 

그러니 이 기도의 배후에는 언제나 예수님이 함께 동행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드님을 통하여 비로소 ‘아버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처럼 이 기도는 우리에게 ‘아버지’를 선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느님의 아들이 되게 합니다.

곧 성자의 반열에 들게 하고 하느님이 되게 합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놀라운, 고귀한 기도인지요?

 

사실 올바르게 사는 것은 올바른 기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루카 11,2)

 

주님!

당신께서는 저희를 성자의 반열로 들어 올리시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귀한 지위에 들어 올리셨습니다.

이제는 제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소서.

제가 바라는 나라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나라를 이루소서.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생명의 빵이신 아드님을 양식으로 삼아 당신 안에서 영원히 살고, 당신과 한 몸이 되게 하소서.

다름 아닌 용서를 통하여 그러하게 하소서.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 되게 하시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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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2.10.05 아멘~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10.0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2.10.05 아멘 고맙습니다.
    이신부님, 푸른잎새님 감사합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2.10.0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아낄래요 | 작성시간 22.10.05 감사합니다.~
    오늘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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