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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2년 11월 3일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2.11.02|조회수224 목록 댓글 8

▥ 제1독서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 3,3-8ㄱ>


형제 여러분,

3 하느님의 영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4 하기야 나에게도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는 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5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6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7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5,1-10>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오늘 우리가 들은 비유는 죄인을 끝까지 찾으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회개한 죄인 하나를 두고 즐거워하시는 ‘하느님의 기쁨’에 대한 말씀입니다.

 

비유 속에서 목자는 ‘잃은 양’을 '찾아낼 때까지' 뒤쫓아 다닙니다.

여인 역시 ‘잃은 드락메’를 '찾아낼 때까지' 샅샅이 뒤집니다.

 

이는 잃은 것을 찾으시는 구원의 주체가 하느님이심과 또한 ‘먼저’ 찾으시고, ‘끝까지’ 찾으시는 ‘신실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잃은 것을 되찾은 후에,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루카 15,6.8)라고 말씀하심은 이 비유의 정점이 잃은 것을 되찾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를 되찾은 후에 ‘이웃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에 있음을 말해줍니다.

 

사실 이 '기쁨'은 너무도 커서 도저히 나누지 않고는 못 배기는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린 아픔이 마치 백 마리의 양을 모두 잃어버린 것처럼 아팠고, 은전 한 드락메를 잃어버린 슬픔이 마치 열 드락메를 전부 잃어버린 것처럼 슬펐기에, 양 한 마리를 되찾은 기쁨은 마치 백 마리의 양 전부를 되찾은 것처럼 기뻤고, 은전 한 드락메를 되찾은 기쁨이 마치 열 드락메 전부를 되찾은 것처럼 기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양들을 맡기신 아버지께 대한 ‘충실함’이요, 드락메를 결혼의 징표로 주신 신랑이신 예수님께 대한 ‘신의’입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죄인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치 전부인 양 소중히 여기시는 하느님의 지극하신 사랑입니다.

 

‘하나 안에서의 전부인 사랑’, ‘전부 안에서의 하나인 사랑’, 바로 이 사랑이 십자가에 매달린 한 마리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전 인류를 구원하신 전부인 사랑입니다.

바로 이 크신 사랑을 만나면 그 누구도 기쁘지 않을 수가 없고, 나누지 않을 수가 없고, 회개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니 '회개'는 당신을 만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당신과의 만남의 결과요, 당신 사랑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하느님과의 만남의 기쁨이요, 재회의 기쁨이요, 나를 찾아오신 하느님의 크나큰 사랑에 대한 기쁨입니다.

바로 이 기쁨이야말로 요한복음 사가가 말한 “아무도 빼앗아가지 못할 기쁨”(요한 16,22)입니다.

 

사실 이 비유는 “이 사람은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요한 15,2)하고 투덜거리는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 비유 말씀은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 9,10)는 당신 자신의 소명과 행위를 옹호하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렇게 우리를 찾고 계시는 음성, 곧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창세 3,6) 하고,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찾아 목숨까지 바치신 당신의 외아들을 만나야 할 일입니다.

또한 잃었던 양을 되찾기 위해 광야를 쫓아다니며, 잃었던 은전을 되찾기 위해 등불을 켜고 집안을 쓸며 샅샅이 뒤지는 목자의 사명도 깊이 새겨야 할 일입니다.

 

사실 이는 ‘이미’ 우리가 받은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기쁨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그분이 구원자이심을 명심하고, 그분처럼 사랑하되 ‘먼저’ 사랑하고, ‘끝까지’ 사랑하며, 보잘 것 없는 하나를 사랑하되 ‘전부’를 사랑하고, 소중히 사랑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루카 15,6)

 

주님!

저를 먼저 찾으시고 끝까지 찾으시니 찬미를 받으소서.

보잘 것 없는 하나를 사랑하되 전부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고

먼저 사랑하되 끝까지 신실하게 사랑하시니 찬미를 받으소서.

보잘 것 없는 죄인 하나이지만 전부인 양 소중히 여기시니

바로 이것이 제가 지닌 최상의 기쁨입니다.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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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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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감사하는 | 작성시간 22.11.03 아멘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2.11.03 아멘!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11.03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에메랄드3 | 작성시간 22.11.03 아멘!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2.11.03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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