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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2년 11월 6일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2.11.05|조회수243 목록 댓글 6

▥ 제1독서

<마카베오기 하권의 말씀 7,1-2.9-14>


그 무렵

1 어떤 일곱 형제가 어머니와 함께 체포되어 채찍과 가죽끈으로 고초를 당하며, 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강요를 임금에게서 받은 일이 있었다.
2 그들 가운데 하나가 대변자가 되어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를 심문하여 무엇을 알아내려 하시오?
우리는 조상들의 법을 어기느니 차라리 죽을 각오가 되어 있소.”
둘째가

9 마지막 숨을 거두며 말하였다.
“이 사악한 인간, 당신은 우리를 이승에서 몰아내지만, 온 세상의 임금님께서는 당신의 법을 위하여 죽은 우리를 일으키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
10 그 다음에는 셋째가 조롱을 당하였다.
그는 혀를 내밀라는 말을 듣자 바로 혀를 내밀고 손까지 용감하게 내뻗으며,
11 고결하게 말하였다.

“이 지체들을 하늘에서 받았지만, 그분의 법을 위해서라면 나는 이것들까지도 하찮게 여기오.
그러나 그분에게서 다시 받으리라고 희망하오.”
12 그러자 임금은 물론 그와 함께 있던 자들까지 고통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그 젊은이의 기개에 놀랐다.
13 셋째가 죽은 다음에 그들은 넷째도 같은 식으로 괴롭히며 고문하였다.
14 그는 죽는 순간이 되자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이 더 낫소.
그러나 당신은 부활하여 생명을 누릴 가망이 없소.”

 

 

▥ 제2독서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2서 말씀 2,16─3,5>


형제 여러분,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또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신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3,1 끝으로 형제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서처럼 빠르게 퍼져 나가 찬양을 받고,
2 우리가 고약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구출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은 성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고 여러분을 악에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4 우리는 주님 안에서 여러분을 신뢰합니다.
우리가 지시하는 것들을 여러분이 실행하고 있고 앞으로도 실행하리라고 믿습니다.
5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이끄시어, 하느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이르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20,27-38>


그때에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전례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시작임을 말해줍니다.

곧 부활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의인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곧 율법으로 금하는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하는 임금에게 맞서서 일곱 형제는 부활의 생명을 믿고 희망하며 죽어가면서 말합니다.

“온 세상의 임금께서는 ~ 죽은 우리를 일으키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요.”

(2마카 7,9)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성전에서 있었던 ‘반대자들과의 논쟁’(20,1-21,4)의 일부입니다.

여기에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먼저 사두가이파의 질문(루카 20,28-33)은 한 부인이 과부가 되어 다른 시동생 여섯 명과 차례대로 결혼하여 살다가 죽었다면, 다시 살아났을 경우에 그 부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 라는 가상적인 예를 듭니다.

 

이는 <신명기> 25장 5-6절에 나오는 ‘수숙혼’의 율법,(“여러 형제가 함께 살다가 그 중의 하나가 아들 없이 죽었을 경우에 시동생이 그를 아내로 맞아야 하고. 그래서 낳은 첫 아들은 죽은 형의 이름을 이어받아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라지지 않게 하여야 한다.”)에 따른 주장인데, 사실 이 질문은 그들이 부활한 상태를 마치 지상에서의 삶과 동일하게 여기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곧 그들은 부활한 사람들의 삶을 장가가고 시집가는 등 지상 삶의 연장이라고 전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첫 번째 답변(20,34-36)에서는 현세의 삶과 내세의 삶이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밝혀줍니다.

곧 그들은 하느님의 부활의 능력이 마치 죽은 사람을 죽기 전의 생활로 되돌려놓는 정도로 여기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부활한 상태를 영적 존재로, 마치 천사와 같이 장가가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는 죽음의 지배를 받지 않는 존재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답변(20,37-38)은 사두가이파들이 존중하는 모세의 율법서인 탈출기 3장 6절을 통한 대답입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야훼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당신 자신을 성조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계시한다는 사실 자체가 성조들이 부활하여 하느님 가까이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밝히시면서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루카 20,38)

 

이는 하느님께서 성조들에게 여러 차례 말씀하신 “너희와 함께 있겠다.” 라고 하신 말씀의 실현을 의미합니다.

곧 야훼 하느님은 언제나 살아계신 하느님으로서 당신의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심을 말해줍니다.

 

사실 죽음은 결정적 단절이요 파괴임에는 틀림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죽음은 우리 생명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충만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곧 죽음으로 인생이 허무로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고 영원한 생명으로 피어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이삭은 씨앗이 죽은 것이 아니라, 씨앗이 더 아름답고 더 크게 발전한 것이듯이, 인생의 끝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움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부활은 단지 되살아난 것만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 안에서 다시는 죽지 않을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이러한 새롭게 변화된 부활체에 대해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모두 다 죽지 않고 변화할 것입니다.

~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이 썩는 몸은 썩지 않을 몸을 입고, 이 주는 몸은 주지 않는 몸을 입어야 합니다.”

(1코린 15,51-53)

 

그러니 오늘 우리는 파스카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두가이가 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다면 현대판 사두가이는 누구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갇혀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곧 자신이 아는 것 이상의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신과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각자 지니고 있는 현재의 틀(패러다임)을 과감히 깨야만 할 일입니다.

과감하게 바리사이적인 고착과 완고함을 깨고,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살아가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다.”

(루카 20,38)

 

주님!

저희를 깨우쳐 주소서.

죽음이 단절과 파괴가 아니라 충만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임을!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탄생임을!

생명의 끝이 아니라 씨앗이 죽어 열매를 맺듯, 새로운 생명이 피어나게 함을!

단지 되살아난 것만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 안에서 다시는 죽지 않을 새로운 존재로 변화됨을!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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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이기창 | 작성시간 22.11.0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2.11.06 아멘~감사합니다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2.11.06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11.0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2.11.0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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