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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2년 11월 15일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2.11.15|조회수225 목록 댓글 8

▥ 제1독서

<요한 묵시록의 말씀 3,1-6.14-22>


나 요한은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1 “사르디스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하느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말한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살아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것이다.
2 깨어 있어라.

아직 남아 있지만 죽어 가는 것들을 튼튼하게 만들어라.
나는 네가 한 일들이 나의 하느님 앞에서 완전하다고 보지 않는다.
3 그러므로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겨, 그것을 지키고 또 회개하여라.
네가 깨어나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가겠다.
너는 내가 어느 때에 너에게 갈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4 그러나 사르디스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몇 있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5 승리하는 사람은 이처럼 흰옷을 입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명의 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을 것이고, 내 아버지와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6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14 라오디케이아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아멘 그 자체이고 성실하고 참된 증인이며 하느님 창조의 근원인 이가 말한다.
15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16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17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18 내가 너에게 권한다.
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흰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
19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
20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21 승리하는 사람은, 내가 승리한 뒤에 내 아버지의 어좌에 그분과 함께 앉은 것처럼, 내 어좌에 나와 함께 앉게 해 주겠다.
22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9,1-1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 복음은 자캐오 이야기로,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이 이야기는 하느님이 인간을 찾아나서는 거대한 역사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앞 장면(1-4절)이 자캐오가 예수님을 찾는 이야기라면, 뒤 장면(5-10절)은 예수님이 자캐오를 찾는 이야기입니다.

 

앞 장면에서 자캐오는 ‘키 작은 세관장이고 부자’였지만 동포의 조롱과 멸시를 받아야 했고, 매국노의 혐오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키가 작다’는 말은 그가 외면적으로뿐만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그처럼 초라했고 ‘작은 자’였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그래서 깊은 자괴심과 열등감으로 황폐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예수님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었고, 예수님을 보려고 앞질러 달려가 무화과나무 위에까지 올라갔습니다.

 

뒤 장면에서 자캐오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신 ‘사람의 아들’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무화과나무 위에 걸린 죄인 세리 자캐오와 나무 아래 있는 예수님 사이에서 드러납니다.

마치 그것은 십자가 아래 있던 백인대장의 고백처럼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루카 19,5)

 

참 이상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아셨는지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마치 이곳에서 서로 만나기로 약속한 이를 알고 부르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곳이 당신께서 자캐오를 불러내신 약속 장소였습니다.

당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내는 장소요, 자캐오가 누구인지를 구원을 얻는 장소요,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는 장소였습니다.

 

그 장소로 부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알고 계시고, 그의 아픈 마음도 이미 다 헤아려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당신이 그를 약속 장소로 이끄시고, 당신이 그 약속장소로 찾아오셨습니다.

마치 “내가 당신을 찾았다면, 그것은 당신께서 저를 먼저 찾으셨기 때문입니다.”라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루카 19,10)

 

그렇습니다.

이제 나무 위에서 얼른 내려와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 사람이 하늘로 올라갈 필요가 없는 까닭입니다.

나무 위에 달리셨던 그분이 먼저 땅으로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자캐오는 ‘일어서서’(부활하여!) 말합니다.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횡령한 것이 있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 19,8) 하고 고백하고,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루카 19,19)고 선언됩니다.

 

이 ‘자캐오 이야기’는 예수님의 구원사건이 자동적이거나 법칙적인 것이 아니라 실존적이고 창조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에 대한 순명으로 자동적이고 법칙적으로 구원이 온다’는 당시의 신학을 뛰어넘어, 자캐오와 같이 실존의 변화라는 창조적 행위를 통해서 구원은 비로소 역동적으로 체험되고 현실이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오늘, 이러한 역동적인 실존의 변화를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곧 “얼른 내려오라”고 하십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루카 19,5)

 

주님!

당신은 저를 훤히 아십니다.

교만과 탐욕의 나무 위에 올라 허영과 가식으로 몸을 가리고 죄 속에 웅크리고 있는 저를 훤히 아십니다.

그릇된 저의 모든 행실을 아시고, 손가락질 당하고 배척받는 아픔도 아시고, 죄인인 채로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이 가련함도 훤히 아십니다.

바득바득 기어 올라간 교만과 허영에서 얼른 내려와 당신 발아래 엎드리게 하소서.

당신 사랑 앞에 부복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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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돈보스코 | 작성시간 22.11.15 아멘
  • 작성자주주 | 작성시간 22.11.1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2.11.15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감사하는 | 작성시간 22.11.15 아멘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11.15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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