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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2년 11월 17일 목요일 ·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2.11.16|조회수186 목록 댓글 6

▥ 제1독서

<요한 묵시록의 말씀 5,1-10>


나 요한은

1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 안팎으로 글이 적힌 두루마리 하나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일곱 번 봉인된 것이었습니다.
2 나는 또 큰 능력을 지닌 천사 하나가 큰 소리로, “이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펴기에 합당한 자 누구인가?” 하고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러나 하늘에도 땅 위에도 땅 아래에도 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4 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보기에 합당하다고 인정된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슬피 울었습니다.
5 그런데 원로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울지 마라.

보라,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여 일곱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게 되었다.”
6 나는 또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사이에,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양이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어린양은 뿔이 일곱이고 눈이 일곱이셨습니다.
그 일곱 눈은 온 땅에 파견된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7 그 어린양이 나오시어,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으셨습니다.
8 어린양이 두루마리를 받으시자, 네 생물과 스물네 원로가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수금과, 또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들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님께서는 두루마리를 받아 봉인을 뜯기에 합당하십니다.
주님께서 살해되시고 또 주님의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속량하시어 하느님께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10 주님께서는 그들이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한 나라를 이루고 사제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들이 땅을 다스릴 것입니다.”

 

 

✠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9,41-44>


그때에

4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42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43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44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오늘 <복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에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시며 우시며 말씀하셨다.”

(루카 19,41)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마치 엘리사가 이스라엘의 범죄를 두고 울었던 것처럼(1열왕 8,11), 예레미아가 유다의 유배를 두고 세 번이나 울었던 것처럼(예레 9,1;13,17;14,17) 우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두고 전에도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루카 13,34)하시고 탄식하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또한 라자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리아 앞에서도 우신 적이 있습니다(요한 11,35).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우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큰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식을 올리셨습니다.”(히브 5,7)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하여라. 우는 사람들!”

(마태 5,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보시고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루카 19,42) 하고 탄식하시며, 당신께서 우시는 이유를 이렇게 밝히십니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루카 19,44)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지 못함에 대해 우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간다는 예루살렘 사람들의 무지와 어리석음에 가슴이 미어지셨습니다.

그토록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지만, 그들은 ‘평화를 가져다주는’ 당신과 ‘당신이 찾아오신 때’를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파괴에 대해서 세 번씩이나 예고(루카 19,43-44; 21,20-24; 23,28-31)하시고, 그것을 종말을 예시하는 역사적 심판으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예수님의 울음과 말씀은 단순한 탄식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적 경고요, 회개의 결단의 촉구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당신의 눈물로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도 세상을 보고 울 줄을 알고 아파할 줄을 알라는 것이요, 또한 하느님과 하느님의 뜻을 알아들으라는 말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2013년 람페두사 난민 방문미사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함께 슬퍼하는 울음과 연민의 경험을 상실한 사회에서 살아갑니다. 
무관심의 세계화는 우리에게서 우는 능력을 빼앗아갔습니다. 
... 누가 울고 있습니까? 

누가 오늘 이 세상에서 울고 있습니까?”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가 당신의 뜻을 외면하여, 또 다시 당신을 울리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드리고, 당신의 눈에 웃음을 꽃피워 드리게 하소서! 

 

 

<오늘의 말 · 샘 기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도성을 보시고 우시며”

(루카 19,41)

 

주님!

도시를 보고, 세상을 보고, 비난할 줄은 알아도 울 줄은 몰랐습니다.

세상의 아픔과 슬픔을 보고, 범죄와 불의를 보고, 울지도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무관심과 패배의식에 갇혀 당신의 뜻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안정과 편리를 도모하며 이기심과 타협했습니다.

하오니 주님!

제 마음에 눈물을 주소서.

세상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울 수 있는 사랑의 눈물을 주소서.

우는 이들과 함께 울며 당신의 눈물을 닦아드릴 수 있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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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돈보스코 | 작성시간 22.11.17 아멘
  • 작성자이기창 | 작성시간 22.11.17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주주 | 작성시간 22.11.17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2.11.17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11.17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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