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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2년 11월 19일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2.11.19|조회수210 목록 댓글 9

▥ 제1독서

<요한 묵시록의 말씀 11,4-12>


나 요한에게 이런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여기 나의 두 증인이 있다.”
4 그들은 땅의 주님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 나무이며 두 등잔대입니다.
5 누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 원수들을 삼켜 버립니다.
누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는 반드시 이렇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6 그들은 자기들이 예언하는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하늘을 닫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원할 때마다 온갖 재앙으로 이 땅을 치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7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끝내면, 지하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싸워 이기고서는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8 그들의 주검은 그 큰 도성의 한길에 내버려질 것입니다.
그 도성은 영적으로 소돔이라고도 하고 이집트라고도 하는데, 그곳에서 그들의 주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9 모든 백성과 종족과 언어와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사흘 반 동안 그들의 주검을 바라보면서, 무덤에 묻히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10 땅의 주민들은 죽은 그들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서로 선물을 보낼 것입니다.
그 두 예언자가 땅의 주민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나 사흘 반이 지난 뒤에 하느님에게서 생명의 숨이 나와 그들에게 들어가니, 그들이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들을 쳐다본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12 그 두 예언자는 하늘에서부터, “이리 올라오너라.” 하고 외치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원수들이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20,27-40>


그때에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39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40 사람들은 감히 그분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사두가이들의 부활에 관한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서 우리의 부활신앙을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사두가이들의 영적 무지와 예수님의 신적 지혜가 대조를 이룹니다.

곧 영적 무지로 인한 속박을, 신적 지혜로 인한 자유와 해방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속박과 자유가 ‘믿음’에 달려 있음을 말해줍니다.

 

오늘 복음의 병행구절인 마태오복음에서,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두가이들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마태 22,39-40).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부활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사두가이들의 영적 무지를 두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곧 ‘성경에 대한 무지’와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무지’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면서 물질만을 유일한 실체로 여긴 까닭에, 내세나 부활과 영적 존재에 대해서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합리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 아래 하느님의 권위와 능력을 제한했습니다.

곧 부활케 하시는 하느님의 초월적인 권능을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25장 5-10절에 나오는 ‘수혼법’을 예로 들면서,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하여, 하느님의 부활의 능력을 마치 죽은 사람을 원래대로 죽기 전의 생활로 되돌려놓는 정도로 여깁니다.

그래서 부활한 상태의 초월적인 실재인 부활체를 마치 육체를 지닌 존재로 보고서 지상에서의 삶과 동일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부활한 영적 존재는 “마치 천사와 같아 시집가는 일도 장가가는 일도 없고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고 하시면서, 그들이 믿고 있는 모세오경의 탈출기(3,6)를 인용하여 그들의 영적 무지를 깨우치십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주었다.”

(루카 20,37)

 

이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이 비록 죽어 과거의 인물이 되었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살아 있는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다.”

(루카 20,38)

 

그러니 하느님께서는 ‘산 이들의 하느님’으로서 인간을 ‘새롭게 변화된’ 부활체로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이러한 새롭게 변화된 부활체에 대해서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인들에게 이렇게 설명해줍니다.

“우리 모두 다 죽지 않고 변화할 것입니다.

~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1코린 15,51-52)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는 이들입니다.

진정 믿으면 신적 지혜가 열릴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와 해방이 올 것입니다.

 

불신은 우리를 끝없이 속박할 뿐이지만, 믿음은 우리를 진리에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곧 믿음이 해방을 가져올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다.”

(루카 20,38)

 

주님!

저희를 깨우쳐주소서.

죽음이 단절과 파괴가 아니라 충만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임을!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탄생임을!

생명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이 피어나게 함을!

단지 되살아 난 것만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 안에서 다시는 죽지 않을 새로운 존재로 변화됨을!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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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감사하는 | 작성시간 22.11.19 아멘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2.11.19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2.11.19 아멘~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11.1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2.11.19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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