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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2년 12월 4일 대림 제2주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2.12.03|조회수243 목록 댓글 8

▥ 제1독서
<이사야서의 말씀 11,1-10>


그날 

1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2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3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4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
5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6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8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9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1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이사이의 뿌리가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져 겨레들이 그에게 찾아들고 그의 거처는 영광스럽게 되리라.

 


▥ 제2독서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 15,4-9>


형제 여러분, 

4 성경에 미리 기록된 것은 우리를 가르치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하게 됩니다.
5 인내와 위로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뜻에 따라 서로 뜻을 같이하게 하시어,
6 한마음 한목소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빕니다.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8 나는 단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서 진실하심을 드러내시려고 할례 받은 이들의 종이 되셨습니다.
그것은 조상들이 받은 약속을 확인하시고,
9 다른 민족들은 자비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민족들 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 이름에 찬미 노래 바칩니다.”

 


✠ 복음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3,1-12>


1 그 무렵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3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4 요한은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5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6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7 그러나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10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11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12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오늘은 대림 2주일입니다. 

그리고 인권주일이고 사회교리주간입니다. 

우리는 지난 대림 1주일에 ‘그분이 오시니, 기뻐하고 깨어 준비하고 기다리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다가온 주님을 맞이할 채비를 서둘러라 하십니다.

곧 그분을 맞이하는 데 합당한 자가 되라 하십니다.

 

동시에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가 기다리는 분이 “주님의 영이 머무르는 분”(이사 1,2)으로 소개합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오신 그분이 “할례 받은 이들의 종”(로마 15,8)이 되셨음을 말합니다.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오시는 분을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마태 3,11)

첫째 증언은 그분께서는 자신보다 '뒤에 오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선포되고 있는 것은 사실 '뒤'가 아닌, '지금' 입니다.

시기적으로는 '뒤'지만, 시점으로는 '지금'입니다. 

이는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오던 그분이 ‘드디어 오신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분이 지금 ‘막 오고 계신다’는 긴박한 상황을 강조해 줍니다.

곧 그분께서 미래가 아닌, ‘지금’ 오신다는 선포입니다.

그리하여 요한은 우리의 관심을 자기 자신이 아닌, ‘지금 오시는 분’에게로 집중시킵니다.

자신은 단지 그분의 ‘길을 닦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삶의 자세입니다. 

‘주님을 주인 되게 하는 일’ 일입니다.

자신을 주변으로 밀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지금 바로 여기에 우리의 주님으로 오십니다.

둘째 증언은 그분께서는 '자신보다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자신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고 말합니다.

곧 '종'될 자격마저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겸손한 인격을 만납니다. 

사실 타인을 자신보다 더 능력 있는 이로 인정해준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자신보다 어리고 후배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종’의 자격마저도 없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영웅적인 겸손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신원을 정확히 알고 깨달은 데서 나오는 겸손입니다.

그래서 셋째 증언에서 요한은 그분께서는 당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이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여기에서 세례자 요한과 그분과의 근본적인 차이가 드러납니다.

곧 ‘신원의 차이’와 ‘사명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세례자 요한은 비록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표시’로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결코 죄를 용서할 수는 없었습니다.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은 하느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단지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준비를 시켰을 뿐입니다.

그는 성령을 불어넣을 그릇과 그 공간은 만들 수 있었지만, 그 그릇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이라는 말은 그분께서 ‘용서할 수 있는 분이요,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이 오셔서 바로 이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사명이었다면, 예수님께서는 그 그릇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그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대림 제2주일을 맞으면서, 우리의 정체성과 사명을 되새겨 보아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세례 때 이미 받은 '새로운 생명'과 '용서'를 선포하고 증거하고 전파해야 할 사명을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를 새겨들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알렐루야 환호송에서는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이는 단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준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곧 이 세상과 이 시대가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주님의 길을 마련하라는 외침입니다. 

이를 오늘 화답송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시편 72,7 참조)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마태 3,3)

 

주님!

사방이 탁 트여 어디 하나 숨을 곳이 없는 곳, 발가벗겨진 광야로 불러내어 제 실상을 보게 하소서.

회개의 영을 불어 넣으시어 굽은 데를 곧게 하소서.

낮아지고 작아지고 무력해지고 가난해지는 당신의 길을 걷게 하소서.

당신을 위하여 걷고 당신과 함께 걷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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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2.12.04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2.12.04 감사합니다!
  • 작성자쉬리* | 작성시간 22.12.04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12.04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stranger | 작성시간 22.12.04 아멘,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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