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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2년 12월 6일 대림 제2주간 화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2.12.05|조회수266 목록 댓글 10

▥ 제1독서

<이사야서의 말씀 40,1-11>


1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2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3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4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5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6 한 소리가 말한다.

“외쳐라.”
“무엇을 외쳐야 합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7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9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
10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11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 복음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8,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참 묘한 일입니다. 

나무들은 걸치던 옷들을 다 벗고서 겨울을 나는데, 우리네 인간들은 옷을 겹겹이 덧입고서 겨울을 납니다. 

겨울나무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비우는데, 우리네 인간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오히려 채웁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 자신을 그렇게 채우는 바람에 그분이 들어오시지 못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도 자신을 채우는 게 아니라 자신을 비워야 하지 않을까요?

그 비워진 그 자리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대림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는 오늘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선 목자에 대한 비유’를 들었습니다.

 

이 비유의 ‘목자’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려 인류라는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선 그리스도를 표상합니다.
이 비유는 '목자의 기쁨'과 '아버지의 뜻'에 대해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마태 18,10)

그리고 그 이유를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기 때문”(마태 18,11)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비록 작은이들 가운데 하나라 할지라도 소중히 여기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목자의 기쁨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아버지의 기쁨’ 입니다.

이는 작은 것 하나마저도 귀중하게 여기시는 아버지의 사랑, 비록 보잘 것 없는 죄인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치 전부인 양 소중히 여기시는 아버지의 지극하신 사랑입니다. 

결국, 이 비유의 정점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아버지의 사랑’을 행하심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아버지의 이 지극하신 사랑’을 알려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목숨을 바쳐 ‘이 사랑’을 행하셨고, 바로 그 일을 당신의 기쁨으로 삼으셨습니다. 

따라서 이 비유 말씀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목자이신 당신의 소명이요, 동시에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의 소명임을 말해줍니다. 

제1독서에서는 이를 이렇게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이사 40,11)

그러니 우리는 우리를 찾고 계시는 아버지의 음성,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기쁨에 귀 기울여야 할 일입니다. 

또한 잃은 양을 찾아나서는 목자처럼 ‘먼저’ 찾아 나서고, ‘먼저’ 사랑해야 할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작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끌어안아야 할 일입니다. 

그래야 그렇게 작은 모습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맞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목숨을 걸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도 막상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기쁨'보다 우리 자신의 뜻과 기쁨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이제는 냉정하게 자신에게 물어야 할 일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기쁨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가? 

대체 어떨 때 기뻐하는가? 
나의 뜻이 아니라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뻐하는가? 

 

 

<오늘의 말 · 샘 기도>

 

“아버지의 뜻”

(마태 18,14)

 

주님!

당신 기쁨이 제 기쁨이 되게 하소서!

저를 소중히 여기시는 당신의 사랑을 알게 하소서!

오늘도 “너 어디 있느냐?”하고 찾으시는 당신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네 형제 아벨은 어디 있느냐?”하고 물으시는 당신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먼저 찾아오신 당신처럼, 저도 먼저 형제에게 다가가게 하소서!

제 사랑의 소중함보다 당신 사랑의 소중함을 먼저 보게 하시고, ‘당신 뜻’의 소중함을 알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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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2.12.06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감사하는 | 작성시간 22.12.06 아멘
  • 작성자혜원 | 작성시간 22.12.0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12.0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kbhjohn | 작성시간 22.12.06 아멘~~
    하나라도 잃지 안는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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