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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2년 12월 18일 대림 제4주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2.12.18|조회수351 목록 댓글 8

▥ 제1독서
<이사야서의 말씀 7,10-14>


그 무렵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 제2독서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시작 1,1-7>


1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을 받은 바오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
2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것으로,
3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4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5 우리는 바로 그분을 통하여 사도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6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에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7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로서 하느님께 사랑받는 로마의 모든 신자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 복음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18-24>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그 몸에 잉태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오늘은 대림 제4주일입니다.

가까이 오신 아기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채비를 갖추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준비만으로는 부족한 일입니다.

준비를 넘어서, 이제는 우리의 결정적인 협조를 필요로 할 때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탄생이 우리의 협조를 통해서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기 예수의 탄생도 요셉과 마리아의 응답과 협조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이를 잘 보여주는데, 먼저 제1독서에서는 임마누엘의 탄생이 예고되고, 곧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다.”(이사 7,14)라고 예고됩니다.

제2독서에서는 예고된 이 일이 이루어진 다음, 그 은총으로 이루어진 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곧 바오로는 자신의 사도직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은총임을 말하고 있습니다(로마 1,1-7).

 

오늘 복음에서는 이러한 하느님의 계획과 예언이 요셉의 협조를 통해 이루어짐을 밝혀줍니다.

이를 먼저 이렇게 전합니다.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태 1,18)

 

이 소식에 요셉은 무척 당혹했을 것입니다.

약혼자의 임신 사실에 온갖 의혹과 치욕스런 배신감으로 분노와 갈등을 겪었을 것입니다.

마리아에 대한 서운함과 불신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남자 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궁색하고 구차한 변명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약혼녀 마리아가 아기를 가진 사실을 드러내어 재판을 걸게 되면 그녀를 죽음에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고, 그냥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마리아를 집 안에 받아들이는 일도 우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공적인 고소를 통해 마리아를 수치스럽게 만들지 않으려고,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마태 1,19)

참으로 그는 '의로운 사람'(마태 1,19)이었습니다.

 

그럴 즈음에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에게서 벌어진 일을 밝혀줍니다.

“그 몸에 잉태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태 1,20)

 

참으로 기이하고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과 자연계의 모든 법칙을 뛰어넘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이 터무니없는 일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그렇지만 그는 ‘의심’이라는 악을 떨치고, ‘신비’라는 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 일이 거룩한 분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일임을 믿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 안에 자신을 가두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인간의 지혜로 가히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 은총의 법을 따르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야흐로 은총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아직 뜨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 빛으로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약혼녀 마리아의 성령잉태 사실뿐만 아니라, 요셉에게도 ‘사명’을 부여합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마태 1,21)

 

이처럼 주님의 천사는 그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곧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붙이는 영예를 받았습니다.

비록 아기는 자신의 자식이 아니지만, 그를 보살필 아버지로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마침내 요셉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분 뜻에 협조자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대로 아내를 맞아들였습니다.'(마태 1,24).

 

참으로 그는 ‘순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안락과 평안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결국 그는 결혼하기도 전에 아내를 포기해야만 했고, 아들을 얻기도 전에 아들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행동하는 믿음과 순명’으로 구원받는 모든 이들의 양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인류를 향한 하느님 ‘구원계획의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온 누리에 구원을 가져왔습니다.

 

이처럼 구원은 ‘우리의 협조’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구원의 협조자’가 된다는 것은 구원을 이루시고자 하는 '그분의 뜻' 안에 머물고, '그분의 뜻'에 따라 협조하여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요셉은 오늘 복음에서뿐만 아니라 복음서 전체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항상 침묵으로 하느님의 음성에 마음의 귀를 열고, '아버지의 뜻'에 순명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분이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요셉 성인과 함께 구원의 협조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령의 활동과 거룩한 분의 힘을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의심하기보다 신비를 품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행동하는 믿음과 순명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마태 1,20)

 

주님!

의심을 떨치고 신비를 받아들이게 하소서.

당신의 개입을 맞아들이게 하소서.

기이하고 황당하게 보여도 ‘당신의 뜻’에 가두어지게 하소서.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게 보여도 ‘당신의 뜻’을 품고 살아가게 하소서.

제 안에 ‘당신의 뜻’을 세우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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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안나쌤 | 작성시간 22.12.18 아멘!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2.12.18 아멘~감사합니다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2.12.18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12.18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2.12.1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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