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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1월 21일 토요일 ·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01.20|조회수260 목록 댓글 9

<제1독서>
▥ 히브리서의 말씀입 9,2-3.11-14

 

형제 여러분,
2 첫째 성막이 세워져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제사 빵이 놓여 있었는데, 그곳을 ‘성소’라고 합니다.
3 둘째 휘장 뒤에는 ‘지성소’라고 하는 성막이 있었습니다.
11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것들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은, 곧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는 더 훌륭하고 더 완전한 성막으로 들어가셨습니다.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습니다.
13 염소와 황소의 피, 그리고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리는 암송아지의 재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그 몸을 깨끗하게 한다면,
14 하물며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음의 행실에서 얼마나 더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3,20-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20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21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오늘 복음은 두 개의 절로 되어 있는 짧은 본문입니다. 

첫 번째 절(20절)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곧 복음으로 ‘물들어가고 섞여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치 배추벌레가 배추를 먹으면서 배추색깔로 변해가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절(21절)에서 복음사가는 말합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마르 3,21)

여기에서 “붙잡다”(krateo)라는 말은 ‘손에 쥐다, 제지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친척들이 ‘예수님의 활동을 제지하러 나섰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자신들의 손에 쥐고 조정하고 흔들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난 예고 하셨을 때, '베드로가 당신을 꼭 붙잡고 반박'(마르 8,32)하자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33)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활동을 제지하려고 붙잡는 이는 그가 비록 제자라 하더라도, 혹은 친척이라 하더라도,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사탄의 행위가 되고 맙니다. 

그러니 우리는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실 때 “나를 따라 오너라.”고 부르신 것이지, ‘나를 붙잡으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을 따를 뿐 붙잡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곧 자기의 뜻으로 예수님을 붙들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서 막달레나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을 때도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말라.”(요한 20,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붙들린 사람’, ‘예수님께 붙잡힌 사람’, ‘하느님께 사로잡힌 사람’(앙드레 루프) 일 뿐입니다. 

곧 우리가 하느님을 제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제지하시도록 승복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하느님의 그 제지는 우리의 굴복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로운 응답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원하는 바를 얻으려고 예수님을 붙잡으려 하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님께 붙들려 사로잡혀 따라가고 있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붙드셨고,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매달려 있는 이들인 것입니다. 

사실 친척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러 나선 이유는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붙들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에 붙들려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생각에 붙잡혀버리지 않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하느님이 아니라 한갓 우리가 만들어 놓은 우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예수님은 진정한 의미에서 ‘미치신 분’이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 사로잡히신, ‘아버지께 미치신 분’이십니다.

 

동시에 ‘나에게 미치신 분’이십니다.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나, 내가 배신하고 무관심할 때마저도, 언제나 나에서 눈을 떼지 않으시는 진정, ‘나에게 미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행복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마르 3,21)

 

주님!

당신께 사로잡힌 자 되게 하소서.

당신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 붙잡힌 자로 살게 하시고,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사로잡혀 살게 하소서.

사람의 일이 아니라 당신의 일에 붙들려 살게 하시고,

당신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조정에 승복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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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3.01.21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3.01.21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1.21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stranger | 작성시간 23.01.21 아멘, 신부님감사합니다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3.01.22 아멘~♡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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