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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1월 29일 연중 제4주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01.28|조회수291 목록 댓글 9

제1독서
▥ 스바니야 예언서의 말씀 2,3; 3,12-13

 

3 주님을 찾아라, 그분의 법규를 실천하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이들아!
의로움을 찾아라. 

겸손함을 찾아라.
그러면 주님의 분노의 날에 너희가 화를 피할 수 있으리라.
3,12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 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 1,26-31

 

26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8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9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31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행복하기를 바란다.
...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갈망한다 해도 유일한 목표는 행복이다.”

그런데 진정한 ‘참 행복’은 무엇일까?

사실 우리는 ‘행복은 더 많이 소유하고 더 값지고 좋은 것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 자본주의 개척자라 할 수 있는 록펠러는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느냐?’는 질문에 “1달러라도 더 가지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욕망과 애착을 채우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될까요?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첫 번째 참 행복’을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마태 5,3)

한편, 삶에는 결핍과 슬픔이나 고통이 끝없이 전개됩니다. 

그러나 행복의 반대는 이러한 결핍이나 슬픔이나 고통이 아니라 생기 없는 무기력함과 무감각함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결핍과 슬픔과 고통은 오히려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깨우쳐주기도 합니다. 
그러니 ‘행복한 삶’은 생기 있는 생명력으로 충만하게 살아있을 때일 것입니다. 

 

‘충만하게 살아있다’는 것은 자아의 깊은 곳을 살아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자신이 자신일 수 있는 자리요, 존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영혼을 살아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행복선언’으로, 비록 지금 가난하고 굶주리고 울어도 하느님이 함께 계시기에 행복하다는 하늘나라의 성취에 대한 예언자적 선언이며 축복입니다. 

사실 당시의 유대교는 재물을 가진 자, 배부른 자, 웃는 자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자이고, 가난한 이, 굶주리는 이, 우는 이는 하느님이 버린 결과로 비참하게 된 이들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재물이 많고 적음, 배부름과 배고픔, 기쁨과 슬픔을 넘어서 하느님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이 우리에게는 “참된 행복”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정 우리가 가난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비록 우리가 가난하지만 이미 그분을 차지한 까닭에 부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 슬퍼할 줄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죄를 슬퍼하되 이미 자비 안에서 위로받고 기쁘기 때문이요, 우리가 진정 온유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있어야 할 하느님 품 안에 있기에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감미로움에 빠진 까닭입니다. 

우리가 진정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야하는 이유는 주님을 극단적으로 필요로 하는 일 외에는 결코 아무 것도 내세우지 않기에 그분 외에는 결코 아무 것에도 목마르지 않기 때문이요, 우리가 진정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주님의 마음을 품은 까닭입니다.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그분의 손길에 매만져진 까닭이요, 진정 우리가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하는 이유는 그분의 영에 끌려 다스림을 받기 때문이요,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주님의 것’인 까닭입니다. 

그러니 ‘기뻐하고 즐거워 할 일입니다.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머튼은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이란 필요한 한 가지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삶 안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찾아내기만 하면 나머지 것들은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 
바로 이때 필요한 한 가지는 물론 다른 모든 것이 주어진다.”

그렇다면 ‘필요한 한 가지’는 무엇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내용은 같을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실현하는 것, 곧 하느님이 바라시는 모습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행복하여라. ~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5,1-12)

주님!

가난을 살게 하소서.

당신을 이미 차지한 까닭에 더 이상 아무 것도 차지할 것이 없게 하소서.

슬퍼할 줄을 알게 하소서.

가엾이 여기는 당신의 마음에 제 가슴이 찔리게 하소서.

온유해 지게 하소서.

당신의 품에 안겨 다독거려지게 하소서.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하게 하소서.

참된 음료인 당신께 맛 들어지게 하소서.

자비를 베풀게 하소서.

측은히 여기는 당신의 마음을 선사받게 하소서.

제 마음을 깨끗하게 하소서.

당신의 손길에 매만져지게 하소서.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소서.

당신 손이 저를 이끌게 하소서.

의로움 때문에 모욕을 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제가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주님의 것이 되게 하소서.

이 복된 삶이 제게는 참된 행복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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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안나쌤 | 작성시간 23.01.29 아멘!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3.01.29 아멘!
  • 작성자stranger | 작성시간 23.01.29 아멘, 신부님 감사합니다
  • 작성자돈보스코 | 작성시간 23.01.29 아멘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1.29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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