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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2월 19일 연중 제7주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02.19|조회수283 목록 댓글 6

제1독서
▥ 레위기의 말씀 19,1-2.17-18

 

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17 너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그 사람 때문에 죄를 짊어지지 않는다.
18 너희는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 3,16-23

 

형제 여러분,
16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17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18 아무도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
19 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그들의 꾀로 붙잡으신다.”
20 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생각을 아신다. 

그것이 허황됨을 아신다.”
21 그러므로 아무도 인간을 두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22 바오로도 아폴로도 케파도, 세상도 생명도 죽음도,
현재도 미래도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23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5,38-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 말씀전례는 ‘거룩함과 완전한 사랑’ 곧 ‘성덕과 완덕’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레위 19,2)고 하시고,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 3,17)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48)고 하십니다. 

이러한 ‘성덕’과 ‘완덕’에 대한 말씀은 루카복음에서는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로, 요한복음에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먼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마태 5,39)

그렇다면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함은 대체 어쩌란 말씀일까요?

무관심하거나 피하거나 대처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곧 악인에게 맞서지 말라는 말씀은 악에 물들지 말라는 말씀인 것이지, 결코 악에 무관심해라는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도피요, 자기 기만이요, 비겁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물론 우리는 약한지라, 때로는 피해 달아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마치 선조 요셉이 포티파르의 아내에게서 겉옷을 벗어던지고 달아났던 것처럼(창세 39,6-23 참조) 달아나는 것이 상책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악은 단지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입니다. 

피한다고 해서 치유되거나 보복심과 복수심이 사라지거나 문제가 나아지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억울하고 원망이 깊어지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니 악은 진정한 방법으로 맞서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그 방법을 가르쳐주십니다.

그것은 악을 도피하거나 벗어나는 길이 아니라 혹은 그것에 물드는 것이 아니라, 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일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선을 행하는 길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함은 ‘맞대응하지 마라’는 말씀으로, 같은 방법으로 응하지 마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에서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악 가운데서도 주님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 신뢰를 두고 의탁하라는 말씀입니다.

악을 오히려 선의 통로로 대처하라는 말씀입니다.

 

악을 악으로 맞대응하는 것은 악을 이기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악과 맞서 대응하다보면 자신도 악에 물들어버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불을 불로 끌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불은 물로 꺼야 하듯, 악을 이기는 현명한 방법은 오히려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누가 오른 뺨을 치거든 다른 뺨을 돌려대는’(마태 5,39) 것이 오히려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보복심이나 복수심을 몰아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지키는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내어주고 선을 행하는 것이 이기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랑만이 진정으로 악과 맞서는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마태 5,44)

이는 단지 사랑에 한계를 두지 말라는 말씀인 것만은 아니라 사랑의 대상에 한계를 두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나아가서,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일수록 오히려 사랑이 더 필요한 대상임을 깨우쳐주십니다.

마치 죄인이기에 처벌하기보다 죄인이기에 용서받아야 할 대상이듯이 말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만 구원받아야 할 존재인 것이 아니라 타인도 구원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만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인 것이 아니라 타인도 사랑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원수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자라서가 아니라 미움이 아름다운 우리의 마음을 더럽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지 우리 자신이 더러워지지 않으려고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소중히 여기시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곧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실 자비를 베풀면 자신의 영혼이 해를 입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타인도 살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마태 5,44)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만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손수 십자가 위에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 5,45)고 하십니다. 

마치 스테파노가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사도 7,60 참조), 사도 바오로가 고난을 당하면서도 유대인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1코린 4,12 참조) 말입니다. 

사실 친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죄는 짓지 않을지라도 의로움을 행한 것은 아닙니다.

그가 비록 악에서는 떠났을지라도 선을 행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악을 피하는 것만이 아니라 선을 행할 때 진정 완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5,48)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덕의 최고 정점인 ‘완덕’으로 이끄십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이 본문을 해설하면서 덕의 아홉 단계를 이렇게 말합니다.

 

덕의 첫 단계는 불의로 시작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 단계는 자기가 당한대로 되갚지 않는 것이요, 셋째 단계는 해를 입히는 이에게 똑같은 식으로 대하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요, 넷째 단계는 억울한 고통도 기꺼이 당하는 것이요, 다섯째 단계는 악행자가 빼앗고자 하는 것보다 더 많이 주는 것이요, 여섯째 단계는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요, 일곱째 단계는 그런 이를 사랑하기까지 하는 것이요, 여덟째 단계는 그런 이에게 선을 베풀기까지 하는 것이요, 아홉째 단계는 원수를 위해 하느님께 간청하는 것입니다. 


결국 완전한 사랑(완덕)이란, 결코 흠 없는 무결점의 상태나 죄 없는 완벽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완전하기에 자신의 약함과 결함을 통하여 흘러든 자비로우신 분의 사랑에 유대를 맺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밝힌 대로 우리가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우리 안에 계신”(1코린 3,16) 까닭에 기능한 일입니다.

 

결국 거룩한 영이신 성령에 따라 사는 이가 성화를 입고 완덕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성화가 아버지의 뜻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데살 4,3)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마태 5,44)

 

주님!

단지 사랑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이 그에게도 사랑이 되게 하소서.

내가 기도해해주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나의 기도가 가장 필요하고 나의 사랑이 가장 필요한 사람, 나를 힘들어 하고 나의 용서가 절실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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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쉬리* | 작성시간 23.02.1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안나쌤 | 작성시간 23.02.19 아멘!
  • 작성자하늘 바래기 | 작성시간 23.02.1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2.1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stranger | 작성시간 23.02.19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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