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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3월 19일 사순 제4주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03.19|조회수347 목록 댓글 11

제1독서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 16,1ㄱㄹㅁㅂ.6-7.10-13ㄴ

 

그 무렵

1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떠나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에게 보낸다.
내가 친히 그의 아들 가운데에서 임금이 될 사람을 하나 보아 두었다.”
이사이와 그의 아들들이

6 왔을 때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바로 주님 앞에 서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7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10 이사이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사이에게 “이들 가운데에는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없소.” 하였다.
11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아들들이 다 모인 겁니까?” 하고 묻자, 이사이는 “막내가 아직 남아 있지만,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말하였다.

“사람을 보내 데려오시오.
그가 여기 올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소.”
12 그래서 이사이는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다.
그는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였다.
주님께서 “바로 이 아이다. 일어나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사무엘은 기름이 담긴 뿔을 들고 형들 한가운데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 5,8-14

 

형제 여러분,

8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9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
10 무엇이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 가려내십시오.
11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둠의 일에 가담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십시오.
12 사실 그들이 은밀히 저지르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입니다.
13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모두 빛으로 밝혀집니다.
14 밝혀진 것은 모두 빛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9,1-41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2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3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6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그에게 이르셨다.
‘실로암’은 ‘파견된 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그가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8 이웃 사람들이, 그리고 그가 전에 거지였던 것을 보아 온 이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이가 아닌가?”
9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이오.”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니오. 그와 닮은 사람이오.” 하였다.
그 사람은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0 그들이 “그러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묻자,
11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12 그들이 “그 사람이 어디 있소?” 하고 물으니, 그가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들은 전에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들에게 데리고 갔다.
14 그런데 예수님께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날은 안식일이었다.
15 그래서 바리사이들도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다시 물었다.
그는 “그분이 제 눈에 진흙을 붙여 주신 다음, 제가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6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몇몇은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고, 어떤 이들은 “죄인이 어떻게 그런 표징을 일으킬 수 있겠소?” 하여, 그들 사이에 논란이 일어났다.
17 그리하여 그들이 눈이 멀었던 이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당신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러자 그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18 유다인들은 그가 눈이 멀었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앞을 볼 수 있게 된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19 그들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소?”
20 그의 부모가 대답하였다.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이라는 것과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것은 우리가 압니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누가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었는지도 우리는 모릅니다.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이를 먹었으니 제 일은 스스로 이야기할 것입니다.”
22 그의 부모는 유다인들이 두려워 이렇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면 회당에서 내쫓기로 유다인들이 이미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23 그래서 그의 부모가 “나이를 먹었으니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하고 말한 것이다.
24 그리하여 바리사이들은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다시 불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시오. 우리는 그자가 죄인임을 알고 있소.” 하고 말하였다.
25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제가 눈이 멀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것은 압니다.”
26 “그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소? 그가 어떻게 해서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소?” 하고 그들이 물으니,
27 그가 대답하였다.

“제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은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째서 다시 들으려고 하십니까?
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28 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말하였다.
“당신은 그자의 제자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요.
29 우리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아오.
그러나 그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오.”
30 그 사람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니, 그것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31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을 들어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누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면, 그 사람의 말은 들어 주십니다.
32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해 주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33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34 그러자 그들은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 하며, 그를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35 그가 밖으로 내쫓겼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만나시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36 그 사람이 “선생님,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자,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38 그는 “주님, 저는 믿습니다.” 하며 예수님께 경배하였다.
39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40 예수님과 함께 있던 몇몇 바리사이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하고 말하였다.
4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오늘은 사순 제4주일이며, 기쁨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참된 기쁨이 어디로부터 오는 지를 밝혀줍니다.

곧 참된 기쁨은 ‘빛을 보는 데서 온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본다’는 것은 ‘안다’는 것을 말해주기에, 기쁨은 ‘빛이신 주님을 아는 데서 온다.’는 것을 밝혀줍니다. 

우리는 모두 눈을 지니고 있고, 눈으로 타인과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바라본다고 해서 모두 제대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당달봉사가 있는가 하면, 눈을 감고도 볼 수 있는 심미안이 있고, 보아도 보여지는 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이 보는 대로만 고집하는 편견이 있습니다. 

제1독서는 눈이 빛나는 다윗이 선별되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1사무 16,7)

제2독서는 빛의 자녀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이야기입니다.

 

바오로는 에페소인들에게 말합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

(에페 5,8-14)

그리고 복음은 태생소경이 눈을 뜨고 빛을 보는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은 태생소경이 보지 못하는 것이 자신의 죄든, 부모의 죄든, 죄 탓인지를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이 그에게서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이다.”

(요한 9,3) 

그렇습니다. 

그에게서 하느님의 일이 드러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소경인 그는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인류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곧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대변해 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가 눈을 뜨게 되는가?

그에게 빛이 생기게 되는가? 

그는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묻혀 진흙에 개어서 자신의 눈에 바르며,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라.”(요한 9,7)하신 말씀대로 했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도 못했지만, 말씀에 순명하여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보다 앞서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당신의 침을 묻힌 진흙을 눈에 발라 주었습니다.

진흙으로 빚어진 그의 살이 예수님의 신성과 결합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도유된 것입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친히 소경의 눈을 만지시고, 그의 가슴 속에 당신의 빛을 부어주시어 그가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는 남들처럼 볼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까지도 보게 되었습니다.

소경은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혹 우리는 예수님을 보고도 아직 눈먼 존재로 살고 있지는 않는지요?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본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우리 가정, 우리 공동체를 주님을 계시하는 장소로 알아 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실을 떠난 저 높은 곳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의 신학자라 불리는 보나벤뚜라는 인간에게는 3중의 눈이 있음을 이렇게 말합니다.

“육신의 눈과 지성의 눈과 관조의 눈이 그것이다. 

인간은 육신의 눈으로써 세계와 그 안에 있는 것을 보고, 정신의 눈으로써 영혼과 그 안에 있는 것을 보며, 관조의 눈으로써 하느님과 하느님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본다.

그리하여 인간은 육신의 눈으로써 인간 밖에 있는 것을 인식해야 하고, 지성의 눈으로써 인간 안에 있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관조의 눈으로써 인간 위의 것을 인식해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소경이었다가 ‘눈을 뜬 이’에게 말합니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요한 9,37)

분명 우리는 이미 그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하고 있다면, 곧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면, 완고하여 보고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분명 여전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혹 나는 지금 빛이 아니라 어둠을 보고 있지는 않는지요? 
혹 자신에게서나 타인에게서 어둠이 보인다면, 얼른 그 어둠을 비추고 있는 빛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우리 안에는 이미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빛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빛을 향하여 있어야 할 일입니다.

세상과 모든 이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일, 바로 이것이 '기쁨주일'인 오늘 우리가 누리는 참된 기쁨일 것입니다.

빛이 어둠을 몰아낼 것입니다. 

오늘 복음 본문의 마지막 장면에서 바리사이들이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요한 9,41)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요한 9,37)

 

주님!

분명 이미 당신을 보았습니다.

보고도 아직 보지 못함은 완고하여 인정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여전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항상 저를 향하여 계신 사랑입니다.

하오니, 빛을 보게 하소서.

당신 사랑을 보게 하소서.

당신을 보게 하소서.

나의 주님!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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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3.03.19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안나쌤 | 작성시간 23.03.19 아멘!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3.03.19 아멘~♡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3.1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3.03.1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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