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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3월 26일 사순 제5주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03.26|조회수256 목록 댓글 6

제1독서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 37,12ㄹ-1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2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13 내 백성아, 내가 이렇게 너희 무덤을 열고, 그 무덤에서 너희를 끌어 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4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이다.”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 8,8-11

 

형제 여러분,

8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11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11,1-45

 

그때에

1 어떤 이가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는 마리아와 그 언니 마르타가 사는 베타니아 마을의 라자로였다.
2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린 여자인데, 그의 오빠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3 그리하여 그 자매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듣고 이르셨다.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5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셨다.
6 그러나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르셨다.
7 예수님께서는 그런 뒤에야 제자들에게, “다시 유다로 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8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 바로 얼마 전에 유다인들이 스승님께 돌을 던지려고 하였는데, 다시 그리로 가시렵니까?” 하자,
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낮은 열두 시간이나 되지 않느냐?
사람이 낮에 걸어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어디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10 그러나 밤에 걸어 다니면 그 사람 안에 빛이 없으므로 걸려 넘어진다.”
11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이어서,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2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그가 잠들었다면 곧 일어나겠지요.” 하였다.
13 예수님께서는 라자로가 죽었다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그냥 잠을 잔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14 그제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분명히 이르셨다. “라자로는 죽었다.
15 내가 거기에 없었으므로 너희가 믿게 될 터이니, 나는 너희 때문에 기쁘다. 이제 라자로에게 가자.”
16 그러자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가 동료 제자들에게,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하고 말하였다.
17 예수님께서 가서 보시니,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벌써 나흘이나 지나 있었다.
18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에서 열다섯 스타디온쯤 되는 가까운 곳이어서,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28 이렇게 말하고 나서 마르타는 돌아가 자기 동생 마리아를 불러, “스승님께서 오셨는데 너를 부르신다.” 하고 가만히 말하였다.
29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얼른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30 예수님께서는 마을로 들어가지 않으시고, 마르타가 당신을 맞으러 나왔던 곳에 그냥 계셨다.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으면서 그를 위로하던 유다인들은, 마리아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그를 따라갔다.
무덤에 가서 울려는 줄 알았던 것이다.
32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서 그분을 뵙고 그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마리아도 울고 또 그와 함께 온 유다인들도 우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셨다.
34 예수님께서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하고 물으시니, 그들이 “주님, 와서 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36 그러자 유다인들이 “보시오, 저분이 라자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하고 말하였다.
37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몇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저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해 주실 수는 없었는가?” 하였다.
38 예수님께서는 다시 속이 북받치시어 무덤으로 가셨다.
무덤은 동굴인데 그 입구에 돌이 놓여 있었다.
39 예수님께서 “돌을 치워라.” 하시니,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타가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였다.
40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41 그러자 사람들이 돌을 치웠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42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여기 둘러선 군중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43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44 그러자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45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오늘 말씀전례는 성지주일을 앞두고, 마치 부활을 연주하는 ‘전주곡’과 같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무덤에서 끌어내시고, 복음에서는 죽은 라자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며, 당신이 주님이심을 밝힙니다.

화답송에서는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음을, 복음 환호송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찬미하며, 제2독서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영을 통하여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생명의 주님이심을 선포합니다. 

오늘 이 ‘부활의 전주곡’을 들으면서, 사순시기가 생명으로 가는 길, 곧 부활로 가는 길임을 봅니다. 

그리고 그 막바지에 이르러,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쓰라림보다는 감미로움이 서광처럼 비쳐옵니다. 

봄도 사순이 부활로 가는 길이듯, 여름, 가을, 겨울로 가는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을 꽃피우고 열매 맺고, 또 다시 생명으로 피어오르는 봄의 길도 역시 생명의 길입니다. 

 

<봄길>이라는 정호승 시인의 시롤 새겨봅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예수님은 바로 ‘봄길’입니다. 

생명을 열어주고, 부활을 가져다주는 참된 생명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걷는 이 길에 사랑이 걸어갑니다. 

이 길을 걷는 여행은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생각의 이동’(아나톨 프랑스)이요, 참된 생명에로의 이동이요, 사랑에로의 이동입니다. 

오늘 우리는 ‘라자로의 소생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는 이와 함께 울어주는 봄바람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둠의 동굴에 갇혀있는 이를 불러내는 봄 햇살 같은 이야기입니다. 

주저앉아 웅크리고 죽어 있는 이를, 빛으로 불러내는 봄비 같은 생명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라자로의 소생이라기보다, 죽음 앞에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정체입니다. 

곧 죽은 라자로를 살리는 당신이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당신은 스스로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한 11,25)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이십니다. 

요한복음의 머리말에서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라고 장엄하게 예고된 그 “생명”입니다.

곧 빛이신 생명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어 하신 일은 바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죽음의 어둠 속에 생명의 빛을 비추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생명이시요, 빛이신 까닭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생명이신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생명의 길로 부르십니다. 

참 생명에로 이동입니다. 

 

그 길은 ‘앎’에서 ‘믿음’에로의 이동입니다. 

곧 ‘당신이 생명이요 부활임에 대한 믿음’에로의 초대입니다. 

 

본문에서 마르타는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11,22)라고 고백합니다.

마르타는 “알고 있다.”고 고백할 뿐, “믿는다.”고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11,23)라고 말씀하셔도 여전히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11,23)라고, “안다.”고만 고백합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을 떠올려봅니다.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1코린 8,2)

마르타는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은 예수님을 마주하고 있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부활과 생명을 믿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믿음”을 촉구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요한 11,26)

‘아는 것’을 넘어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믿을 때라야 그 믿는 이에게 부활과 생명이 부여된다는 말씀입니다.

부활과 생명은 먼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사건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부활은 믿음 안에서 현재의 사건이 됩니다.

그렇게 ‘믿음’은 오늘도 우리의 일상과 현재를 변화시킵니다.

 

그러기에 부활은 “지금 여기”에서 믿어야 하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죽음 이후에야 얻을 수 있는 생명이 아니라, 현세와 현세를 넘어서 얻을 수 있는 풍만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르타는 여전히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는 질문에 동문서답을 합니다. 
“예,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요한 11,27) 

마르타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었지만, “부활이요 생명”임에 대해서는 믿음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동굴 무덤의 돌을 치우라고 했을 때도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요한 11,39)하고 여전히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거듭 강조하시어 나무라듯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요한 11,40)

이는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앎’에서 ‘믿음’으로의 이동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선사하십니다. 

불신과 어둠의 묻혀있는 저희의 무덤을 열어주십니다. 

 

그리고 저희를 당신 생명의 빛에로 부르십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오너라.”

(요한 11,43)

 

<오늘의 말·샘 기도>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요한 11,26)

 

주님!

부활을 믿게 하소서!

제 생명이 죽고, 당신 생명이 피어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 안에 살아계신 당신 생명을 보게 하소서!

당신의 생명을 살게 하소서!

그리고 마침내 제가 사라지고 당신이 드러나게 하소서!

믿음으로 당신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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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쉬리* | 작성시간 23.03.2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3.03.26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조재현 | 작성시간 23.03.26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3.2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3.03.2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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