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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6월 1일 목요일 ·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06.01|조회수258 목록 댓글 8

제1독서
▥ 집회서의 말씀 42,15-25

 

15 나는 이제 주님의 업적을 기억하고 내가 본 것을 묘사하리라.
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말씀으로 이루어졌고, 그분의 결정은 선의에서 나왔다.
16 찬란한 태양은 만물을 내려다보고 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17 주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이들에게조차 당신의 온갖 놀라운 업적을 묘사할 능력을 주지 않으셨다.
전능하신 주님께서 그 놀라운 업적을 세우시어 만물을 당신 영광 안에 굳게 자리 잡게 하셨다.
18 그분께서는 깊은 바다와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리시고 그 술책을 꿰뚫어 보신다.
사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온갖 통찰력을 갖추시고 시대의 표징을 살피신다.
19 그분께서는 지나간 일과 다가올 일을 알려 주시고 숨겨진 일들의 자취를 드러내 보이신다.
20 어떤 생각도 그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분 앞에는 말 한마디도 숨길 수 없다.
21 당신 지혜의 위대한 업적을 질서 있게 정하신 주님께서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같은 한 분이시다.
그분에게는 더 보탤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으며 어떤 조언자도 필요 없다.
22 그분의 업적은 모두 얼마나 아름다우며 얼마나 찬란하게 보이는가!
23 이 모든 것이 살아 있고 영원히 지속되며 그분께서 필요하실 때는 만물이 그분께 순종한다.
24 만물은 서로 마주하여 짝을 이루고 있으니 그분께서는 어느 것도 불완전하게 만들지 않으셨다.
25 하나는 다른 하나의 좋은 점을 돋보이게 하니 누가 그분의 영광을 보면서 싫증을 느끼겠는가?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10,46ㄴ-52

 

그 무렵 

46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9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하였다.
50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51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52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거지 장님 바르티매오의 치유를 통해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십니다.

곧 눈먼 이의 치유는 어둠 속에 있는 이가 빛을 보게 되는 것을 표상하며, 예언자들에 따르면 메시아의 표지 가운데 하나입니다(이사 35,5; 시 146,8; 마태 11,5). 

본문에서 눈먼 거지 바르티메오는 예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가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른 이들의 꾸짖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악을 쓰듯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마르 10,47)
그분이 지닌 메시아의 권능을 믿고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에게서 나온다는 이사야(11,1) 예언서의 말씀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겉옷을 벗어버리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로 갔습니다.'(마르 10,50)

보이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우리도 오늘 자신을 가리고 있는 “겉옷”은 벗어버려야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체 내가 걸치고 있는 “겉옷”은 무엇일까? 

 

나에게는 하느님의 일을 가리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게 하는 ‘내 생각’이 바로 ‘겉옷’입니다.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는 ‘자애심과 이기심’이 바로 던져버려야 할 ‘겉옷’입니다. 

예수님께서 눈 먼 거지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마르 10,51)

예수님께서는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으시고,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물으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줄 수 있는 분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분께 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는지 환히 아시지만, 우리가 진정 바라야 할 것이 무엇이며, 누구에게 그것을 청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당신께 대한 믿음을 보고자 하십니다. 

당신께 대한 진정한 믿음으로 청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을 믿음으로 청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진정 원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아는 이는 이미 성인입니다.”라는 성 프란치스코는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거지 장님은 예수님께 청했습니다.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마르 10,51)

대체 무엇을 보아야 ‘다시 본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어로 ‘보다’(αναβλεπω)라는 말은 ‘위를 쳐다보다’, ‘새로운 것을 보다’, ‘다시 보다’, ‘시력을 회복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신앙인이 눈을 뜨기 위해서는 항상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이십니다.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의 눈이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할 것입니다. 

 

성전 휘장을 찢어놓으신 그분께서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장막을 걷어내고 영적인 눈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곧 그분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될 때, 우리의 영적인 눈이 뜨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사랑을 보는 영적인 눈이 열릴 것입니다. 

그것은 빛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보는 눈이요, 그분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는 눈이요, 믿음으로 세상과 형제들을 보는 눈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마르 10,52)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마르 10,51)

주님!

제가 보지 못함은 태양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눈을 감고 있는 까닭입니다.

마음이 완고한 까닭입니다.

하오니, 주님! 

성전 휘장을 찢듯 제 눈의 가림 막을 걷어 내소서!

완고함의 겉옷을 벗어던지고, 깊이 새겨진 당신의 영혼을 보게 하소서!

제 안에 선사된 당신 사랑을 보게 하소서.

제 안에 벌어진 당신 구원을 보게 하소서.

제가 바라고 싶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해주시고 싶은 것을 바라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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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3.06.01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3.06.01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3.06.01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6.01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에메랄드3 | 작성시간 23.06.0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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