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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6월 8일 연중 제9주간 목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06.07|조회수274 목록 댓글 7

제1독서
▥ 토빗기의 말씀 6,10-11; 7,1.9-17; 8,4-9ㄱ

 

10 토비야가 메디아에 들어서서 이미 엑바타나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11 라파엘이 “토비야 형제!” 하고 청년을 부르자 그가 “왜 그러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라파엘이 말하였다.

“우리는 오늘 밤을 라구엘의 집에서 묵어야 하는데, 그 사람은 그대의 친족이오. 

그리고 그에게는 사라라는 딸이 있소.”
7,1 엑바타나에 들어서자 토비야가 라파엘에게, “아자르야 형제, 나를 곧장 우리 친족 라구엘에게 데려다 주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는 토비야를 라구엘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마당 문 곁에 앉아 있는 라구엘을 보고 먼저 인사하였다.
라구엘은 “형제들, 기쁨이 충만하기를 비오! 건강히들 잘 오셨소.” 하고 답례한 다음, 그들을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9 라구엘은 양 떼 가운데에서 숫양 한 마리를 잡고, 그들을 따뜻이 맞아들였다.
그들이 몸과 손을 씻고 저녁을 먹으러 식탁에 앉았을 때에 토비야가 라파엘에게, “아자르야 형제, 내 친족 누이 사라를 나에게 주라고 라구엘에게 말씀드리시오.” 하고 말하였다.
10 라구엘이 우연히 이 말을 듣고 청년에게 말하였다.
“오늘 밤은 먹고 마시며 즐겁게 지내라.
형제야, 내 딸 사라를 아내로 맞아들일 자격이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나도 사라를 너 말고 다른 남자에게 줄 권리가 없다.
네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친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얘야, 너에게 사실을 알려 주어야겠다.
11 나는 벌써 사라를 우리 동포 일곱 남자에게 차례로 주었지만, 사라가 있는 방에 들어가는 그 밤으로 다 죽어 버렸다.
그러니 얘야, 지금은 그냥 먹고 마셔라.
주님께서 너희를 돌보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토비야는 말하였다.
“제 일을 결정지어 주시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습니다.”
그러자 라구엘이 말하였다.
“그렇게 하마. 모세의 책에 있는 규정에 따라 사라는 네 사람이다.
하늘에서도 사라는 네 사람이라고 이미 판결이 내려졌다.
너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이하여라.
이제부터 너는 사라의 오라비고 사라는 너의 누이다.
오늘부터 사라는 영원히 네 사람이다.
그리고 얘야, 오늘 밤에 하늘의 주님께서 너희를 잘 보살피시고, 너희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풀어 주시기를 빈다.”
12 그러고 나서 라구엘은 자기 딸 사라를 불렀다.
사라가 오자 라구엘은 그 손을 잡고 토비야에게 넘겨주며 말하였다.
“율법에 따라 사라를 아내로 맞이하여라.
모세의 책에 쓰인 규정에 따라 사라는 네 아내다.
그러니 네가 맡아서 네 아버지께 잘 데려가거라.
하늘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번영과 평화를 베풀어 주시기를 빈다.”
13 라구엘은 다시 사라의 어머니를 불러서 쓸 것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세 율법의 규정에 따라 사라를 토비야에게 아내로 준다는 혼인 계약서를 썼다.
14 그러고 나서 그들은 먹고 마시기 시작하였다.
15 라구엘은 자기 아내 아드나를 불러, “여보, 다른 방을 준비해서 사라를 그리로 데려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16 아드나는 가서 라구엘이 말한 대로 그 방에 잠자리를 차려 놓은 다음, 사라를 그리로 데려갔다.
그리고 사라 때문에 울다가 눈물을 닦고 그에게 말하였다.
17 “얘야, 용기를 내어라.
하늘의 주님께서 너의 그 슬픔 대신에 이제는 기쁨을 주실 것이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그러고 나서 아드나는 방을 나갔다.
8,4 부모가 방에서 나가 문을 닫자 토비야는 침상에서 일어나 사라에게 말하였다.
“여보, 일어나구려. 

우리 주님께 기도하며 우리에게 자비와 구원을 베풀어 주십사고 간청합시다.”
5 사라가 일어나자 그들은 기도하며 자기들에게 구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청하였다.
토비야는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당신의 이름은 대대로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하늘과 당신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영원히 찬미하게 하소서.
6 당신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협력자며 협조자로 아내 하와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둘에게서 인류가 나왔습니다.
당신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와 닮은 협력자를 우리가 만들어 주자.’ 하셨습니다.
7 이제 저는 욕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저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8 그들은 “아멘, 아멘.” 하고 함께 말하였다.
9 그러고 나서 그날 밤 잠을 잤다.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12,28ㄱㄷ-34

 

그때에 

28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


어제 복음의 사두가이와의 논쟁에서, 예수님께서는 부활과 부활체의 특성,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산 이들의 하느님, 곧 생명의 하느님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그 말씀을 듣고 있던 율법교사는 그 생명을 길인 계명에 대해서 묻게 됩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

(마르 12,28)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마르 12,29-31)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행동의 원리로서의 계명을 말씀하기 전에, 그 계명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왜 중히 여겨야 하는지,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먼저 밝히십니다.

곧 행위규범으로 사랑을 말씀하시기에 앞서, 왜 사랑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와 명분과 정당성을 밝혀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그분이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지 하느님께서 ‘한 분 이신 하느님’이시라는 사실과 ‘우리 주님’이시라는 의미만을 밝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시에 우리의 존재와 의미도 밝혀줍니다.

곧 우리가 ‘그분의 것, 그분의 소유’로 그분의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나아가서, 그분이 우리를 당신의 차지, 소유로 삼기 위해 ‘먼저’ 우리를 당신의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슬기롭게 대답하는 율법학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마르 12,34)
그러니 그는 아직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그가 계명을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이를 몸소 실행할 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아직 선포되지 않은 “새 계명”에 따라 실행하지도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뒤에 선포하게 될 “새 계명”은 구약의 이중계명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장과 15장에서 선포된 “새 계명”은 이중계명이 한 계명으로 통합되며, 이웃 사랑의 시금석이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4;15,12)로 바뀌게 되기 때문입니다.

곧 당신이 먼저 베푼 사랑을 서로 베푸는 하느님 사랑의 실현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차지하고라도, 오늘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삶을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가?" 

"혹 ‘이익을 얻는 법’, ‘손해보지 않는 법’을 배워가고 있지는 않는가?" 

더구나 ‘미워하는 법’을 배워가지는 말아야 할 일입니다. 

 

또 “오롯한 마음으로 사랑을 맨 먼저 앞세우고 있는지?” 물어야 할 일입니다.

만약 우리가 진정 ‘사랑’과 ‘하느님’을 앞세우고 있다면, 하느님과 사랑에 대한 생각으로 우리의 머리가 가득 차 있어 늘 하느님과 사랑에 대한 말을 할 것이고, 사랑하기 위해 고민할 것입니다. 

“오늘 나는 대체 무엇에 제일 관심이 많고, 무슨 생각을 제일 많이 하고, 무슨 말을 제일 많이 하고 살고 있는가?”

“하느님인가? 나 자신인가?세상인가?”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마르 12,31)

주님!

이웃을 남으로 보지 않게 하소서!

아버지 안에 있는 한 형제가 되게 하소서.

사랑이 남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한 몸인 내 자신에 대한 사랑이 되게 하소서.

내 자신의 몸인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

당신 사랑으로 새로 나게 하소서!

내 자신을 통째로 바꾸어 새로워지게 하소서!

이웃을 타인이 아니라 내 자신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그의 기쁨을 내 기쁨으로 삼게 하소서.

이웃 안에, 주님이신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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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앞동산 | 작성시간 23.06.08 아 멘 !
    감사합니다 ^^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3.06.08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쉬리* | 작성시간 23.06.08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3.06.08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6.08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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