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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6월 12일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06.12|조회수315 목록 댓글 13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시작 1,1-7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와 티모테오 형제가 코린토에 있는 하느님의 교회와 온 아카이아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인사합니다.

2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4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5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듯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위로도 우리에게 넘칩니다.
6 우리가 환난을 겪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고,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위로는 우리가 겪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여러분도 견디어 나아갈 때에 그 힘을 드러냅니다.
7 우리가 여러분에게 거는 희망은 든든합니다.
여러분이 우리와 고난을 함께 받듯이 위로도 함께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행복하여라. ~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오늘은 ‘참 행복’이 담고 있는 영성적 특징의 두 기둥에 대해 보고자 합니다. 

 

곧 ‘존재론적 영성과 실천적 영성’, ‘됨’(being)의 영성과 ‘함’(doing)의 영성입니다. 

전자는 우리를 ‘꼴 짓는 영성’이고, 후자는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존재로서의 영성’은 우리의 존재의 틀을 만들고 내용을 채우며 존재를 존재답게 하는 영성이요, ‘실천적 영성’은 존재론적 영성에 살이 입혀진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영성이 내면의 성숙이나 상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행위와 실천으로 살을 입고 구체화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곧 현실에서 육화될 때 비로소 살게 되는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먼저 ‘존재’가 변화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새로운 피조물로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이요, 변화된 존재로서 하느님 나라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존재의 변화를 토대로 실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존재가 새로워졌다면, 그 새로워진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양식이 필요하게 됩니다. 

곧 변화된 새로운 존재인 하느님의 자녀로서, 새로운 창조세계인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기운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존재론적 영성, 곧 ‘됨의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참 행복’에서는 어떤 윤리적 행위를 위한 실천 덕목들이 아니라, 존재의 변화와 변화된 존재의 모습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곧 인간의 외향적인 ‘행위’가 아닌, 내면의 ‘존재됨’을 선언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존재와 행위, 이 둘은 이분법적으로 분리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삶의 양식에서 있어서 둘은 구분됩니다.

그러니 ‘참 행복’은 우리가 무엇을 행하고 그에 따른 보상으로 복이 주어진다는 논리가 아니라, 총체적 존재의 변화를 보여주며, 그것에 따른 영성생활의 행복을 노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됨’의 영성은 존재의 변화를 일으키며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우리 생활의 한 부분을 개선하거나 윤리적, 도덕적 행위를 촉발시키는 데 만족하지 않고, 우리의 전 존재에 획기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 행복’은 단지 여덟 가지 덕목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존재의 여덟 가지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참 행복’은 존재론적 영성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를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합니다.

곧 존재 변화로서의 ‘참 행복’은 삶의 실천적이고 활동적인 측면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됨’의 영성은 ‘함’의 영성으로 육화하게 됩니다.

곧 존재의 영성은 실천적 삶의 영성으로 이어지고, 또 실천적 영성은 존재의 영성으로 맺어지는 과정으로 계속 순환, 반복하게 됩니다. 

이를 ‘참 행복’에서는 이렇게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됨’의 영성은 가난, 슬픔, 온유, 의로움, 자비, 깨끗한 마음, 평화, 박해(고난)로, ‘함’의 영성은 하느님께 예속(의탁), 치유, 섬김, 해방, 용서, 회개, 비폭력, 인내로, 그리고 그 복은 하늘나라, 위로, 땅, 채워짐, 자비, 하느님을 봄, 하느님의 자녀, 하늘나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행복하여라. ~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5,1-12)

주님!

가난을 살게 하소서.

당신을 이미 차지한 까닭에 더 이상 아무 것도 차지할 것이 없게 하소서.

슬퍼할 줄을 알게 하소서.

가엾이 여기는 당신의 마음에 제 가슴이 찔리게 하소서.

온유해지게 하소서.

당신의 품에 안겨 다독거려지게 하소서.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 하게 하소서.

참된 음료인 당신께 맛 들여지게 하소서.

자비를 베풀게 하소서.

측은히 여기는 당신의 마음을 선사받게 하소서.

제 마음을 깨끗하게 하소서.

당신의 손길에 매만져지게 하소서.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소서.

당신 손이 저를 이끌게 하소서.

의로움 때문에 모욕을 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제가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주님의 것이 되게 하소서.

이 복된 삶이 제게는 참된 행복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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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감사하는 사람 | 작성시간 23.06.12 아멘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3.06.12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아낄래요 | 작성시간 23.06.12 항상 감사합니다.~!
    오늘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6.12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사랑해U | 작성시간 23.06.12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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