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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7월 10일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07.09|조회수217 목록 댓글 7

제1독서
▥ 창세기의 말씀 28,10-22ㄱ

 

그 무렵

 10 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11 어떤 곳에 이르러 해가 지자 거기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자다가, 

12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13 주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며 이사악의 하느님인 주님이다.
나는 네가 누워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
네 후손은 땅의 먼지처럼 많아지고, 너는 서쪽과 동쪽 또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땅의 모든 종족들이 너와 네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15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16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하면서,
17 두려움에 싸여 말하였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
18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에 베었던 돌을 가져다 기념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다.
19 그러고는 그곳의 이름을 베텔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성읍의 본이름은 루즈였다.
20 그런 다음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면서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저에게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마련해 주시며,
21 제가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신다면, 주님께서는 저의 하느님이 되시고,
22 제가 기념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느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9,18-26

 

18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라가셨다.
20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21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2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
23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24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25 군중이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26 그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아이에게 손을 얹어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소생 이야기와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은 여인의 치유 이야기입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으로서 명예와 존경을 받는 자였지만, 죽어가는 어린 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것을 가졌다 하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을 뿐입니다.

그 속수무책의 슬픔과 절망 속에서 모든 희망이 무너져 버린 참담한 순간입니다. 

또한 열 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었던 여인은 그 병을 고치기 위해 많은 의사를 찾아가 치료를 받느라 고생하였지만, 가진 것마저 모두 탕진해 자포자기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바로 이 절망의 순간, 억울함과 원망이 밀어닥치는 이 순간, 하염없이 넘어지는 이 순간이 그들에게는 더 깊은 데서 물을 길어 올리게 하였습니다. 

바로 이 순간이 더 깊은 곳으로부터 믿음을 퍼 올리는 기회의 순간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이 믿음의 시련의 순간이기도 하지만, 또한 기회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순간이 그를 더 깊은 믿음에로 이끄시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회당장 야이로도 혈루증 여인도 예수님께 희망을 두고 믿었지만, 사실 그들의 믿음은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구원을 받으리라.’는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믿음은 언뜻 보기에는 미신적이기까지 합니다.

어찌 보면 주술적이고 마술적이기 까지 합니다.

‘이미 죽은 아이에게 손을 얹어주면 다시 살아나리라.’는 회당장의 믿음 역시 억지 부리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어찌 보면 참으로 어리석고 바보짓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끝났다고 여길 때, 바로 그때 하느님께서는 일을 시작하실 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절망적이라고 여길 때, 바로 그때가 구원의 때요, 은총의 때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그분을 밀쳐대는 이는 많지만, 믿음으로 만지는 이는 적습니다.”

바로 이 순간 주님을 밀쳐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주님의 옷깃을 만지는 일이 필요합니다. 

만약 만져도 만져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약한 까닭일 것입니다.

 

베다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단순한 마음이 아니라 의심과 이중성으로 주님께 다가가기 때문에 만져도 만져지지 못합니다.” 
 
그들의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거나, 예수님이 손을 얹어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상황을 바꾸실 수 있는 분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요, 예수님의 권능에 대한 믿음과 자비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두 이야기는 예수님의 신성과 메시아, 곧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시고 하느님이심을 드러내 줍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에 빠지는 일이 없이 끝까지 믿고, 오로지 예수님께만 희망을 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전부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으로 이끄시는 그분의 전능한 손길에 우리의 손을 맡겨드려야 할 일입니다. 

믿음의 손으로 그분의 옷을 부여잡고 그분의 권능과 자비가 우리들 안에 흘러들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아이에게 손을 얹어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마태 9,18)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빚어 만드시고, 당신의 지문을 새기셨습니다.

선악과를 붙잡았던 제 손을 대신하여, 당신 손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 손을 얹으시어, 저를 축복하소서!

제 안에 새긴 당신 얼을 새롭게 하소서!

제 온몸에 사랑의 전류가 흐르게 하고, 제 손을 잡는 이마다 사랑의 전등이 켜지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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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안나쌤 | 작성시간 23.07.10 아멘!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3.07.1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감사하는 사람 | 작성시간 23.07.10 아멘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7.1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앞동산 | 작성시간 23.07.10 아 멘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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