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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7월 18일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07.18|조회수254 목록 댓글 10

제1독서
▥ 탈출기의 말씀 2,1-15ㄴ

 

그 무렵

1 레위 집안의 어떤 남자가 레위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기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겨 길렀다.
3 그러나 더 숨겨 둘 수가 없게 되자, 왕골 상자를 가져다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안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다.
4 그리고 아기의 누이가 멀찍이 서서 아기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5 마침 파라오의 딸이 목욕하러 강으로 내려왔다.
시녀들은 강가를 거닐고 있었는데, 공주가 갈대 사이에 있는 상자를 보고, 여종 하나를 보내어 그것을 가져오게 하였다.
6 그것을 열어 보니 아기가 울고 있었다.
공주는 그 아기를 불쌍히 여기며, “이 아기는 히브리인들의 아이 가운데 하나로구나.” 하였다.
7 그러자 아기의 누이가 나서서 파라오의 딸에게 말하였다.
“제가 가서, 공주님 대신 아기에게 젖을 먹일 히브리인 유모를 하나 불러다 드릴까요?”
8 파라오의 딸이 “그래, 가거라.” 하자, 그 처녀가 가서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왔다.
9 파라오의 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아기를 데려다 나 대신 젖을 먹여 주게.
내가 직접 그대에게 삯을 주겠네.”
그리하여 그 여인은 아기를 데려다 젖을 먹였다.
10 아이가 자라자 그 여인은 아이를 파라오의 딸에게 데려갔다.
공주는 그 아이를 아들로 삼고,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냈다.” 하면서 그 이름을 모세라 하였다.
11 모세가 자란 뒤 어느 날, 그는 자기 동포들이 있는 데로 나갔다가, 그들이 강제 노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그는 이집트 사람 하나가 자기 동포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12 이리저리 살펴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그 이집트인을 때려죽이고서 모래 속에 묻어 감추었다.
13 그가 이튿날 다시 나가서 보니, 히브리 사람 둘이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잘못한 사람에게 “당신은 왜 동족을 때리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자는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판관으로 세우기라도 했소? 당신은 이집트인을 죽였듯이 나도 죽일 작정이오?” 하고 대꾸하였다.
그러자 모세는 “이 일이 정말 탄로 나고야 말았구나.” 하면서 두려워하였다.
15 파라오는 그 일을 전해 듣고 모세를 죽이려 하였다.
그래서 모세는 파라오를 피하여 도망쳐서, 미디안 땅에 자리 잡기로 하였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1,20-24

 

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22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3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24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코라진과 벳사이다와 가파르나움을 꾸짖으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티로나 시돈처럼 바알 우상 숭배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혹은 소돔처럼 타락하고 부패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또는 단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만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도시들이 질책과 경고를 받은 직접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를 오늘 복음의 시작에서는 이렇게 밝히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태 11,20)

그렇습니다. 

단지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가장 많은 기적을 보았는데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곧 그들이 회개하지 않은 것은 기적을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영적 무지로 가려져 있는 어리석음과 굳어진 완고함이었습니다. 

‘회개’(슈브, 메타노이아)란 베풀어진 사랑을 빗나갔음을 깨닫고, 그 사랑으로 바퀴를 돌리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먼저 베풀어진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영적 무지의 어리석음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돌아온 탕자이야기’에서, 특은을 받고도 받은 줄도 모르고 죄지은 줄도 모르기에 돌아오지도 않은 큰아들과 같습니다. 

또한 파라오처럼 많은 기적으로 자꾸자꾸 체험시켜주건만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 완고함과 고집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오늘 우리가 하느님과 공동체로부터 많은 사랑과 특은을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영적무지로 어리석고 완고하고 고집스런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 이야기'(루카 12,41-48)의 말씀이 가슴을 칩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루카 12,47-48)

바로 제가 당신의 뜻을 알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요, 많이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주저하고 망설이며, 이기심과 자애심과 편리와 안주에 사로잡혀 깊이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도시들을 경고하신 것은 그들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한 애타는 사랑의 호소였습니다. 

멸망으로 빠져드는 그들에 대한 동정과 애도의 한탄이요 경고였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애타는 호소를 들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오늘도 주님께서 저희에게 사랑을 요구하시는 것은 저희에게 그 사랑을 주신 까닭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제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것은 저에게 그만큼 많은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전부를 건네주신 우리 주님께 우리도 전부를 건네 드려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태 11,20)

주님!

당신의 꾸짖음이 사랑임을 알게 하소서.

사랑을 받고 또 받으면서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함은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 어리석음에 눈이 가려 마음이 비뚤어지고 변덕스런 까닭입니다.

당신이 많은 사랑을 요구하심은 그토록 많은 사랑을 주셨음임을 알게 하소서.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밑에 모으듯 품으신 그 크신 사랑을 기억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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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3.07.18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안나쌤 | 작성시간 23.07.18 아멘!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3.07.18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감사하는 사람 | 작성시간 23.07.18 아멘
  • 작성자앞동산 | 작성시간 23.07.18 아 멘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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