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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7월 20일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07.20|조회수248 목록 댓글 11

제1독서
▥ 탈출기의 말씀 3,13-20

 

그 무렵 떨기나무 한가운데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들은 

13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14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15 하느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
16 가서 이스라엘 원로들을 모아 놓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고, 그들에게 말하여라.
‘나는 너희를 찾아가 너희가 이집트에서 겪고 있는 일을 살펴보았다.
17 그리하여 이집트에서 겪는 고난에서 너희를 끌어내어, 가나안족과 히타이트족과 아모리족과 프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기로 작정하였다.’
18 그러면 그들이 너의 말을 들을 것이다.
너는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함께 이집트 임금에게 가서, ‘주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저희가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 주 저희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여라.
19 그러나 강한 손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한, 이집트 임금은 너희를 내보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20 그러므로 나는 손을 내뻗어 이집트에서 온갖 이적을 일으켜 그 나라를 치겠다.
그런 뒤에야 그가 너희를 내보낼 것이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나그네가 바랑을 지고 다니듯, 바랑이 없는 거지도 끼니를 챙겨야 하는 ‘짐’을 져야 하듯, 오늘도 우리는 삶을 ‘짐’으로 지고 살아갑니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 있고, 수도자로서 스스로 짊어진 ‘짐’도 있습니다. 

부모로서 져야 하는 ‘짐’이 있고, 자녀로서 져야 하는 ‘짐’이 있고, 가족으로서 함께 져야 하는 ‘짐’이 있습니다. 

질병과 육신, 상처와 나약함, 분노와 원망을 ‘짐’으로 지고 가기도 합니다. 

형제를 ‘짐’으로 지고 가고, 세상을 ‘짐’ 지고 가며, 자기 자신을 ‘짐’으로 지고 갑니다. 

 

자신만이 짊어져야 하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짐’이 있고, 부당하게 떠맡겨지는 ‘짐’도 있고, 피하고 싶은 ‘짐’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짐’을 다른 이에게 떠맡기기도 하고, 다른 이의 ‘짐’을 떠맡기도 하며, 함께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탄생과 더불어 생명을 ‘짐’으로 짊어지고 살아가고, 살면서는 죽음을 ‘짐’으로 짊어지고 죽어갑니다.

사도 바오로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의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2코린 4,10).

 

그런데 나의 몸에서, 나의 짐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드러나고 있는가? 

사실 예수님께서도 ‘짐’을 지고 가셨습니다.

세상을 짊어지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아니, 그 ‘짐’을 지기 위해 오셨습니다.

 

바로 그 ‘짐’을 지고서야 가실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결코 그 ‘짐’을 지지 않고는 가야 할 그 길을 갈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길이요, 십자가 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진 ‘짐’은 우리를 짓누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길을 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고 북돋아줍니다. 

사실 우리를 짓누르는 것은 ‘짐’이 아니라, 짐을 지지 않으려는 우리 자신일 뿐입니다.

오히려 ‘짐’으로 하여 우리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오히려 ‘짐’이 우리를 짊어지고 가는 까닭입니다.

정녕 ‘짐’을 지고서야 갈 수 있는 길을 가는 까닭입니다.

‘짐’이 없이는 가지 못하는 길을 가는 까닭입니다. 

그러기에 ‘짐’은 우리를 북돋아주고 도와주는 은총입니다.

그 ‘짐’은 저를 구원으로 이끄는 ‘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멍에'에 짐을 올려놓고 그리스도와 함께 짐을 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은총을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 우리를 지고 갑니다.

우리가 은총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 우리를 돕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지고 가십니다.

 

그리스도의 멍에에 짐을 올려놓으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걸으시며, 몸소 우리의 ‘짐’마저 짊어지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그 멍에는 편하고, 그 짐은 가볍습니다.”(마태 11,30)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가 짊어진 짐에서 당신의 생명이 피어나게 하소서! 
십자가를 사랑으로 지고서 제가 갈 길을 사랑으로 가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워라.”

(마태 11,29)

 

주님!

당신의 멍에를 메게 하소서.

위에 있지만 짓누르지 않는, 묶지만 옭아 메지 않는, 오히려 편하게 하는 사랑의 멍에를 메게 하소서.

함께 지며 나누는, 함께 가며 끌어주는, 그 손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동행해 주고 길이 되어 주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 마음을 따라 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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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쉬리* | 작성시간 23.07.2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7.2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감사하는 사람 | 작성시간 23.07.20 아멘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3.07.2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3.07.20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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