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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7월 25일 화요일 ·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07.25|조회수337 목록 댓글 12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 4,7-15

 

형제 여러분, 

7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20,20-28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질그릇에 담긴 보물의 비유'를 통해서,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과 영광에 대해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곧 질그릇처럼 깨어지기 쉬운 인간이지만, 그 속에 담긴 복음의 능력으로 결국에는 승리를 거두고 영광을 입을 것임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온갖 환란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2코린 4,8-10)

오늘 복음에서 제베대오의 두 아들 곧 야고보와 요한과 그들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주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있기를 청했습니다.

곧 높은 자리를 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어머니와 아들들의 열망을 나무라시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청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할 수 있는지를 물으십니다.

곧 진정 청해야 할 바가 무엇이고, 진정 행해야 할 바가 무엇이며, 무엇을 먼저 행해야 하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깨우쳐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고 불쾌하게 여기는 다른 제자들을 불러 당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마태 20,26-27)
 
이는 우리에게 높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사람이 진정한 높은 사람이요, 으뜸인 사람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는 진정한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곧 높은 사람, 으뜸인 사람이 되고자 하면, 먼저 섬기는 사람이 되고,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왕이 되고 싶다면 내 아내를 왕비로 대하고, 내가 왕비처럼 살고 싶다면 내 남편을 임금으로 받들어야 할 일입니다. 

내가 성인이 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성인으로 여기고, 내가 예수님이 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예수님으로 바라볼 일입니다. 

 

남을 무시하면 자신도 그렇게 무시당하게 되고, 남을 정당하게 대우하면 정당하게 대우받게 되고, 남을 존중하면 그만큼 존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곧 남을 불신하고 신뢰하지 못하면 자신도 그렇게 신뢰받지 못하고 불신 받을 것이요, 남에게 자비로우면 자비를 입을 것입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억울함을 당하고 있다면, 필시 그도 나에게 억울함을 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뻔하고 당연한 이치를 알면서도 살지를 못합니다.

결국 섬기는 사람이 섬김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아버지를 섬기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었으며, 당신을 배신하고 도망가 버릴 그 제자들을 섬기셨기에 섬김 받으십니다. 

그러나 단지 작고 낮은 자라고 해서 섬기는 자인 것은 아닙니다. 

혹은 희생과 헌신으로 봉사한다고 해서 섬기는 자인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섬긴다는 것’은 자신을 낮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높이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곧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낮춘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는 ‘들어 올림’이 없다면, 진정한 섬김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섬김’은 내가 낮은 자 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높이는 데 그 본질이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를 높이기 위해서, 곧 하느님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섬기셨듯이 말입니다. 

사부 성 베네딕도는 수도원을 “주님을 섬기는 학원”(<규칙서> 머리말 45)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학교에서 ‘주님 섬기기’와 ‘형제 섬기기’를 배우는 학생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섬기면서 섬기는 그 사람을 닮아갑니다. 

스승이신 예수님을 섬기면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마태 20,23)

 

주님!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제 몸에 당신 생명이 담겨 있음을 잊지 말게 하소서.

오늘도 제 몸이 으깨지고 부서져, 당신의 생명을 드러내게 하소서.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청하게 하시고,

언제나 당신의 죽음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당신과 함께 죽음으로써 당신의 생명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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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안나쌤 | 작성시간 23.07.25 아멘!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7.2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3.07.2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앞동산 | 작성시간 23.07.25 아 멘 !
    감사합니다 ^^
    푸른 잎새님 수고하여 주심에 감사드리나이다 ^^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3.07.25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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