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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8월 11일 금요일 ·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08.11|조회수133 목록 댓글 3

제1독서 
▥ 신명기의 말씀 4,32-4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32 “이제, 하느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날부터 너희가 태어나기 전의 날들에게 물어보아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물어보아라.
과연 이처럼 큰일이 일어난 적이 있느냐?
이와 같은 일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33 불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도 너희처럼 살아남은 백성이 있느냐?
34 아니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너희가 보는 가운데 너희를 위하여 하신 것처럼,
온갖 시험과 표징과 기적, 전쟁과 강한 손과 뻗은 팔과 큰 공포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 가운데에서 데려오려고 애쓴 신이 있느냐?
35 그것을 너희에게 보여 주신 것은 주님께서 하느님이시고, 그분 말고는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36 그분께서는 너희를 깨우치시려고 하늘로부터 당신의 소리를 너희에게 들려주셨다.
또 땅 위에서는 당신의 큰 불을 너희에게 보여 주시고, 너희가 불 가운데에서 울려 나오는 그분의 말씀을 듣게 해 주셨다.
37 그분께서는 너희 조상들을 사랑하셨으므로 그 후손들을 선택하셨다.
그분께서는 몸소 당신의 큰 힘으로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
38 그리하여 너희보다 크고 강한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내쫓으시고, 너희를 이 땅으로 데려오셔서, 오늘 이처럼 이 땅을 너희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신 것이다.
39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40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6,24-28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오늘 복음은 일종의 ‘제자 모집 광고’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태 16,24)

오늘날 ‘성소자 모집 광고’를 이렇게 낸다면, 누가 따라 나설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나를 따르려면”으로 시작되는 것은 곧 앞에서 예고하신 수난의 길을 함께 가려는 자를 제자로 모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은 “누구든지”라는 말 속에서 보듯이, ‘원하기면 하면 누구나’ 따라 나설 수가 있으니, 곧 그가 이방인이든 죄인이든 노예든 자유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병자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입니다. 
이 말씀은 먼저 우리는 진정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조건으로 두 가지를 제시하는데, 곧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하십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두 번째 조건인 ‘제 십자가를 지고’에 대해서만 보고자 합니다.

 

‘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단지 고통을 받아들여 짊어지는 것만은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죄인을 못 박는 사형도구이기에, ‘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곧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곧 죄를 지고 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허약함과 무력함을 품고 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다.’ 라는 말의 원어의 뜻이 ‘어머니가 애기를 가슴에 끌어안다’, ‘가장 소중한 것을 가슴에 품다’라는 의미이기에, 십자가는 마지못해 억지로 떠맡아지는 것이 아니라, 흔연히 자발적으로 품는 것이요, 사랑으로 끌어안는 것임을 말해 줍니다.

곧 자신의 죄와 허약함을 소중히 맞아들여 품고 사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십자가를 지셨는가?
예수님께서는 그 본보기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십자가를 만나면, 곧 어떤 어려움이나 고통, 자신의 나약함이나 무능력을 만나면, 그것을 제거하고 해결하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 십자가를 제거하지도 해결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제거할 수 없으면 그것을 피하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것을 피하지 않으셨고, 우리는 십자가를 피해갈 수 없기에 참고 견디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것을 참고 견디지도 않으시고 기꺼이 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견디기 힘들어서 건너뛰거나 초월하고 싶어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결코 십자가를 건너뛰지도 초월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결국 우리는 십자가와 타협하거나 무관심하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것과 타협하지도 무관심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기꺼이 흔연하게 품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랑을 이루셨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사랑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고통을 당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함께 사랑하고 고통 속에서 사랑하는 데에 있는 까닭입니다. 

당신의 사랑은 우리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있고, 우리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바로 그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러니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록 죄와 허약함과 고통 중에 있어도 그것을 벗어나려 하기보다 바로 그 속에서 사랑하라고, 그 속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마태 16,24)

 

주님!

제 자신을 따르지 않고,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제 자신을 붙잡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붙잡고 가게 하소서!

아니, 당신께 붙들려 가게 하소서.

가고 싶은 데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제시한 길을 가며,

당신을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뒤따르게 하소서!

무엇을 하든, 오직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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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앞동산 | 작성시간 23.08.11 아 멘 !
    감사합니다 ^^
  • 작성자혜원 | 작성시간 23.08.11 아멘. 감사합니다 ~🙏🏕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8.11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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