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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8월 17일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08.16|조회수326 목록 댓글 10

제1독서
▥ 여호수아기의 말씀 3,7-10ㄱㄴㄹ.11.13-17

 

그 무렵

 7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내가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너를 높여 주기 시작하겠다.
그러면 내가 모세와 함께 있어 준 것처럼 너와도 함께 있어 준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될 것이다.
8 너는 계약 궤를 멘 사제들에게, ‘요르단 강 물가에 다다르거든 그 요르단 강에 들어가 서 있어라.’ 하고 명령하여라.”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였다.
“이리 가까이 와서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라.”
10 여호수아가 말을 계속하였다. 

“이제 일어날 이 일로써, 살아 계신 하느님께서 너희 가운데에 계시면서, 가나안족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시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1 자, 온 땅의 주인이신 분의 계약 궤가 너희 앞에 서서 요르단을 건널 것이다.
13 온 땅의 주인이신 주님의 궤를 멘 사제들의 발바닥이 요르단 강 물에 닿으면, 위에서 내려오던 요르단 강 물이 끊어져 둑처럼 멈추어 설 것이다.”
14 백성이 요르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천막에서 떠날 때에,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이 백성 앞에 섰다.
15 드디어 궤를 멘 이들이 요르단에 다다랐다.
수확기 내내 강 언덕까지 물이 차 있었는데, 궤를 멘 사제들이 요르단 강 물가에 발을 담그자,
16 위에서 내려오던 물이 멈추어 섰다.
아주 멀리 차르탄 곁에 있는 성읍 아담에 둑이 생겨, 아라바 바다, 곧 ‘소금 바다’로 내려가던 물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그래서 백성은 예리코 맞은쪽으로 건너갔다.
17 주님의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이 요르단 강 한복판 마른땅에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동안, 온 이스라엘이 마른땅을 밟고 건너서, 마침내 온 겨레가 다 건너간 것이다.

 


복음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8,21─19,1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19,1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들을 마치시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으로 가셨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예수님께서는 공동체 설교(마태 18장)에서 먼저 공동체에서의 작은 이들의 가치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되찾은 양의 비유'를 통해 마무리하셨습니다.

이어서 공동체에서의 형제애를 말씀하시면서 먼저 죄지은 형제에 대한 '사랑의 5단계 교정'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매정한 종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왜 용서를 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밝혀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기도 전에, 아니 죄를 지었노라고 인정하기도 전에, 우리를 용서해주신 먼저 베풀어진 자비와 용서를 입었기 때문임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구원해달라고 청하기도 전에 먼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몸소 십자가를 지셨고, 그것도 끝까지, 당신의 목숨을 내놓기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도 당신께서는 똑같은 죄를 자꾸만 반복해서 짓고 또 짓는 우리를 여전히 끝없이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를 끝없이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그를 용서하고 있지 못하는 저를 또한 끝없이 용서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용서하는 이유는 그분께서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입은 바로 그 사랑, 그 용서, 그 자비로 우리도 끝없이 용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마태 18,33)

그러나 자비를 입었다고 해서 모두가 자비로운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자비를 입은 그 사실 자체도 깨닫지 못하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매정한 종의 비유'를 통해, ‘용서하는 자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과 ‘용서받은 자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을 말씀해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빚을 탕감해준 주인의 마음, 곧 '가엾은 마음'(마태 18,27)과 탕감받은 자가 지녀야 하는 마음, 곧 '감사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엾이 여기는 마음'은 빚진 사람이 진 부채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채를 진 사람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해타산의 계산이 아니라, 사람의 존귀함을 들여다보는 마음입니다.

곧 내가 받은 상처를 헤아려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받은 상처를 헤아려보는 마음입니다. 

'감사히 여기는 마음'은 죄를 지은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곧 우리를 향하여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순전한 '선의'요, '자비'를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선의'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에게도 역시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받았음에 대해 '감사히 여기는 마음'이 우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감사'의 표현으로 다른 이들을 '가엾이 여기고', 그들을 '용서'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마태 18,22)

 

주님!

용서하기에 앞서 용서받았음을 깨닫게 하소서.

이제는 더 큰 사랑으로 용서하겠습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끝까지 용서하셨으니

이제는 용서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선으로 사랑하고, 그가 잘 되도록 기도합니다.

이제는 먼저 용서하고 용서에 사랑을 더하고,

아무리 꺾이어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으신 주님처럼,

저 역시 당신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으렵니다.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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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8.17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3.08.17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감사하는 사람 | 작성시간 23.08.17 아멘
  • 작성자앞동산 | 작성시간 23.08.17 아 멘 !
    감사합니다 ^^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3.08.17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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