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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8월 25일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08.24|조회수236 목록 댓글 5

제1독서
▥ 룻기의 시작 1,1.3-6.14ㄴ-16.22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나라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모압 지방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려고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3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어서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다.
4 이들은 모압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파이고 다른 여자의 이름은 룻이었다.
그들은 거기에서 십 년쯤 살았다.
5 그러다가 두 사람도 죽었다.
그래서 나오미는 두 자식과 남편을 여읜 채 혼자 남게 되었다.
6 나오미는 며느리들과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나 돌아가기로 하였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돌보시어 그들에게 양식을 베푸셨다는 소식을 모압 지방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14 오르파는 시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며 입 맞추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15 나오미가 말하였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제 겨레와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
16 그러자 룻이 말하였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22 이렇게 하여 나오미는 모압 출신 며느리 룻과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왔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보리 수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22,34-40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한데 묶으십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모두 형제요 자매들인 까닭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형제에 대한 참 사랑을 가져오며, 반면에 아버지의 아들, 딸을 미워하면서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말하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1요한 4,20)

사실 이 사랑의 계명은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요구합니다.

새로운 변혁, 새로운 틀의 패러다임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이웃을 남으로 보지 않는 관점입니다.

아니, 애시 당초 ‘남’이란 없다는 관점입니다.

단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 한 생명’이 있을 뿐이며, 한 아버지 안에 있는 한 형제자매가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교종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교회문헌 <새 천년기>(43항)에서 친교의 영성에 대해서 다루면서, 바로 이러한 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친교의 영성은 삼위일체의 심오한 신비체 안에서, 타인을 '나의 일부인 사람들'로 생각하고 형제들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을 '나를 위한 선물'로 여길 줄 아는 능력을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야 비로소 이웃과 자신이 분리되지 않고 한 몸의 일부가 되고, 이웃도 내 몸처럼 사랑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암수동형처럼 섞여 혼합되어 한 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몸의 일부로서 각각의 지체로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됩니다.

곧 생물할적인 한 몸을 이루거나 철학적이거나 관념상의 한 몸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의 인격적인 한 몸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은 남에게 베푸는 시혜나 자선이 아니라, 인격 안에서 ‘한 몸’으로 결합되어 있는 이웃에게 베푸는 사랑이 됩니다.

그리하여 형제 사랑이 진정한 하느님 사랑이 되고, 그 사랑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한 생명을 이룹니다.

곧 사랑의 인격체를 이루게 됩니다.

이처럼 ‘사랑의 계명’은 새로운 관점, 새로운 사고와 인식의 틀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탄생, 새로운 인격체인 자기에로의 전환입니다. 

 

곧 남인 이웃이 아니라 하느님인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의 전환이며, ‘남’을 사랑하는 이웃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몸’인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의 전환입니다. 

곧 인격체로서 전환이요, 존재론적인 전환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변화와 실천 안에서 성취되고 완성되어집니다.

 

이를 요한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1요한 4,12)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마태 22,39)

주님!

당신 사랑으로 새로 나게 하소서!

내 자신을 통째로 바꾸어 새로워지게 하소서!

이웃을 타인이 아니라 내 자신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그의 기쁨을 내 기쁨으로 삼게 하소서.

이웃 안에서 주님이신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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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쉬리* | 작성시간 23.08.2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박 베로니카 | 작성시간 23.08.2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8.2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3.08.25 아멘~♡감사합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3.08.25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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