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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9월 24일 연중 제25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09.23|조회수608 목록 댓글 9

제1독서
▥ 이사야서의 말씀 55,6-9

 

6 만나 뵐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
7 죄인은 제 길을, 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 그를 가엾이 여기시리라.
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신다.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9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 1,20ㄷ-24.27ㄱ

 

형제 여러분,
나는

20 살든지 죽든지 나의 이 몸으로 아주 담대히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21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
22 그러나 내가 육신을 입고 살아야 한다면, 나에게는 그것도 보람된 일입니다.
그래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3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편이 훨씬 낫습니다.
24 그러나 내가 이 육신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합니다.
27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십시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20,1-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7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10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11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12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15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16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나는 맨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오늘 말씀은 '하느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곧 자비의 나라임과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곧 자비로우신 분임을 드러내주며, 동시에 그 자비가 어떤 것인지를 드러내줍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자비와 하느님의 자비가 어떻게 다른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를 '위로의 책'이라 불리는 제2 이사야의 말씀인 제1독서에서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이사 55,8)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자비에 대한 하느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비유에는 세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하느님 자비의 특성이 잘 드러납니다. 

곧 하느님 자비의 신비가 드러납니다.

첫째로, 포도원 주인은 대체 때를 가리지 않고 품꾼을 불러들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이른 아침에 나가서 한 데나리온, 곧 그 당시 서민가정의 하루 식비를 약속하고 일꾼들을 고용합니다.

그리고 아침 9시, 12시, 3시, 5시에도 나가서, 일이 없어 서 있는 사람들을 포도원에 보내어 일하게 합니다.

 

이처럼 포도원 주인은 도대체 때를 가리지 않고 품꾼을 불러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일의 실적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계산이라고는 아예 모릅니다.

이는 주인이 애시 당초부터 일을 부리기 위해 품꾼들을 불러들인 것이라기보다, 그들을 살게 하기 위해 불러들인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하늘나라는 불쌍한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주어진 은총입니다. 

그 은총은 하느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부르심 그 자체가 이미 은총인 것입니다. 

오늘도 벌어지는 이 은총에 우리는 기꺼이 응답해야 할 일입니다. 

둘째로, 주인은 품삯을 줄 때에 맨 나중에 불려 온 자부터 줍니다.

이처럼 굳이 늦게 온 이들부터 같은 품삯을 주는 이유는, 무능하여 맨 나중에 올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 대한 깊은 배려와 자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능력이 없는 까닭에 자비에 내맡길 수밖에 없는 '꼴찌'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꼴찌'가 먼저 자비를 입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필요한 자에게 우선적으로 흘러들 수밖에 없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의 공로에 준해서 베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먼저 부어진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결코 순서를 따질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필요의 절실함이 있는 곳으로 먼저 흘러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비는 그가 나와는 친척이나 친분이 있는 관계에 있는가를 찾아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나와는 전혀 무관할지라도 먼저 필요한 사람에게 자비가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셋째로는 주인은 저녁에 품삯을 주면서, 늦게 온 사람들에게서 시작하여 아침 일찍 온 사람들까지 같은 일당을 쳐 줍니다.

우리의 합리적인 관념으로 보면 공평하지 못한 처사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먼저 온 품꾼에 대한 부당한 대우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에게는 계약을 맺은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뒤에 온 이들에게는 자비가 베풀어졌을 뿐입니다.

곧 정당함에 자비를 더하여 셈해주었을 뿐입니다.

결국 먼저 온 이든 나중 온 이든 모두가 자비를 입었습니다.

 

이 모두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느님의 주권적인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나라는 인간이 일한 대가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느님의 주권적인 사랑의 베푸심입니다. 

곧 그 자비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자유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아침 일찍 포도원에 와서 일한 사람들이 불평하자, 이렇게 말합니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 나는 맨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마태 20,12-13)

사실 은혜를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마치 포도원 주인이 애초부터 은혜를 베풀기 위해 품꾼들을 포도원으로 불러들였듯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당신의 교회로 불러들이셨습니다.

 

여기에는 먼저 온 이와 나중 온 이가 따로 없으며, 모두가 자비를 입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첫째라고 뻐기거나, 혹은 꼴찌라고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 제2독서인 바오로 사도가 감옥에서 쓴 필립비서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살든지 죽든지 나의 이 몸으로 아주 담대히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필리 1,20)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자비가 아니라 하느님이 베푸신 자비의 마음을 지녀야 할 일입니다. 

곧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하느님 생각과 빗나가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의 마음을 지니고 하느님의 자비를 베풀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타자를 앞세우는 자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이해타산적인 계산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하여 자신을 건네주는, 곧 타자를 위해 자신이 손해보고 훼손되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를 실행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말로는 그리스도인일지언정 실천적으로는 비신앙인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러니 타자를 앞세우는 데는 '첫째'가 되고, 자기를 내세우는 데는 '꼴찌'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마태 20,4)

 

주님!

당신은 먼저 온 이들에게나 나중 온 이들에게나 똑같이 품삯을 주십니다.

일한 시간이나 실적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도 않으십니다.

애초부터 당신께서는 은혜를 베풀기 위해 저를 당신 포도밭에 불러들이신 까닭입니다.

하오니, 당신 부르심이 제게는 영광이옵니다.

나의 주 나의 임이시여,

영원무궁토록 찬미 영광 받으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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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3.09.24 아멘~감사합니다.
  • 작성자걸레 | 작성시간 23.09.24 주님의 무한한사랑에 다시한번 젖어드옵니다,
  • 작성자atti | 작성시간 23.09.24 아멘.
  • 작성자에메랄드3 | 작성시간 23.09.24 아멘!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3.09.24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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